96년, 미국 해병대원 두 사람이 군사재판 법정에 섰다. 그들의 죄목은 혈액과 신체조직 샘플 채취 거부. 미 국방성은 군인들이 전투에서 사망할 경우 신원 확인을 위한 방법으로 DNA검사를 한다. 그래서 모든 미군들은 의무적으로 샘플 채취에 응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두 병사는 왜 그것을 거부했을까?
지난해 개봉된 영화 「가타카」는 유전 공학적 미래상을 생생하게 그려낸 수작이었다.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혈액을 채취하여 유전자를 검사, 예상수명과 각종 질환의 발병 가능성 등을 계산한다. 특히 이 영화에서 더 인상적인 것은 유전자 조작과 합성으로 우수한 유전인자만 가진 아이가 태어나도록 한다는 설정이다. 그러나 주인공은 부모의 유전자를 그대로 물려받은 「신의 아이」로 태어나 성장 과정에서 여러가지 기회나 혜택에서 원천적으로 배제되는 비참한 삶을 산다.
이 영화의 내용은 일부이기는 하지만 이미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만약 누군가가 유전자 검사를 받아본 결과 몇가지 좋지 않은 인자를 가졌다는 사실이 드러나면 당장 그 사람은 보험이나 취업 등에서 차별받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앞의 해병대원들이 샘플 채취를 거부한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이렇게 드러난 사실은 당사자의 사회생활에서 지울 수 없는 굴레가 되고 결국 심리적으로도 건강한 삶을 영위하기 힘들 것임은 자명한 일이다.
그렇다면 유전자 검사는 이처럼 부정적인 측면만 있을까? 다음의 사례를 보자. 미국의 한 20대 청년은 자신의 어머니가 20대 후반에 결장 암으로 사망한 것이 혹시 유전적 요인은 아니었는지 걱정되었다. 만약 그렇다면 자신도 그 유전자를 지니고 있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그래서 청년은 건강진단 결과 아무런 이상이 없었는데도 별도로 유전자 검사를 받아보았다. 결과는 양성반응. 이 청년도 그의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결장 암으로 발전되는 희귀한 종양의 발병 유전자를 지니고 있었다.
청년은 사형선고를 받은 기분이었지만, 달리 손쓸 방법이 없었으므로 자주 건강진단을 받아보며 생활했다. 그러다가 몇년 지나지 않아 그 특유의 종양이 발생한 것이 포착되었고 그 즉시 외과수술로 종양을 제거했다. 즉, 청년은 종양이 암으로 발전하기 전에 성공적으로 치료받을 수 있었다. 20대 젊은이들은 대부분 암에 걸릴 가능성을 예상하면서 자주 건강진단을 받지는 않으므로 이 청년의 경우도 유전자 검사가 아니었다면 어떤 운명에 처했을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이런 식으로 유전자 검사는 유전성 질환의 예방이나 조기 치료에 결정적인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런데도 아직 유전자 검사가 100% 신뢰성을 갖지는 못한다. 낭포성 섬유증이라는 질병은 특정 유전자 때문에 발생하기는 하지만 그 돌연변이의 종류가 600여 가지나 되어 비용 등의 문제로 도저히 모든 경우를 다 검사해볼 수가 없다. 현재는 가장 빈번한 70가지 정도만 검사하는데 물론 검사에서 음성반응이 나왔다고 해서 이 질병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또 흔히 「노인성 치매」라고 알려진 알츠하이머병도 「E4」라는 특정 유전자의 작용임이 밝혀졌지만 실제 이 병 환자들 가운데는 이 유전자가 전혀 없는 사람들도 많다. 결국 유전자 검사는 현재까지는 그저 「확률의 예측」을 돕는 보조수단일 뿐이다.
현재 다국적 자본과 연구인력이 투입되어 진행되고 있는 「인간 게놈 프로젝트」는 인간의 유전자 지도를 완전히 밝혀내려는 야심찬 시도다. 이 계획이 완성되면 영화 「가타카」의 미래상이 곧 현실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이 영화의 주인공은 모든 유전적 열세를 극복하고 불굴의 의지로 자아실현에 성공한다. 유전 공학적 유토피아도 결국 인간의 존엄성을 떼어놓고 생각할 수는 없는 것이다.
<박상준·과학해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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