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의 특징으로 전문가들은 흔히 「빠른 기술발전」을 꼽는다.
특히 정보통신분야에서는 각종 커뮤니케이션에 이용되는 수단이나 매체 등이 하루가 다르게 세분화·전문화되기 때문에 여간한 전문가가 아니면 이들 분야에서 새로이 쏟아져 나오는 기술을 이해하기도 힘든 실정이다.
이러한 때에 찾게 되는 것이 바로 사전이다.
그러나 현재 시내 각 대형서점에 진열돼 있는 컴퓨터용어사전의 내용을 꼼꼼하게 비교·검토하면 이러한 기대는 곧 실망으로 바뀐다.
영진출판사·정보문화사·성안당 등 컴퓨터 전문출판사들이 최근 몇년 동안 경쟁적으로 펴내는 정보통신용어사전들이 대부분 정보통신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돕기는커녕 오히려 혼란만 가중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최근에 나온 영진출판사 용어사전에서 단어 몇개만 꼼꼼히 살펴보면 이러한 사정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이 사전은 우리가 흔히 상식이라고 생각하는 「마이크로프로세서」에 대해 「컴퓨터의 기본 처리장치 기능을 한개의 LSI에 탑재한 것」이라는 설명에 그치고 있다.
또 LSI라는 용어를 찾으면 「Large-Scale Integration」의
약자만 쓰여있고 이를 다시 뒤지면 「하나의 칩에 100∼5000개의 회로 소자를 형성하고 배선해 만든 집적회로」라는 설명만 나온다.
이런 식으로 용어를 설명한다면 이해는커녕 오히려 불편하기만 하다는 것이 독자들의 생각이다.
이 사전은 또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흔히 사용하는 「레이저」에 대해서도 「파장이 일정해 위상이 고른 빛으로 외부의 에너지에서 생긴 원자가 내는 유도방출을 이용해 얻을 수 있다」고만 설명하고 있다.
이쯤 되면 「마이크로프로세서와 레이저에 대해 이미 알고 있던 내용까지 더욱 헷갈리게 만든다」고 혹평하는 것도 충분한 근거가 있는 주장임을 쉽게 유추할 수 있다.
현재 국내 서점에 팔리는 컴퓨터용어사전 속에 이처럼 「함량미달」의 용어설명이 그 숫자를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들어있다는 것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특히 이것들이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한 「컴퓨터용어대사전」이라면 책의 절반 이상이 그 내용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내용들로 채워져 있다는 것이 독자들의 한결같은 평가다.
이러한 종류의 오류는 정보문화사와 성안당이 각각 지난 97년 펴낸 「Computer Dictionary」와 「컴퓨터용어사전」에서도 발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오류의 정도도 한단계 더 심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지난 97년 재판을 찍은 정보문화사의 「Computer Dictionary」에서 「plug and play」라는 단어를 찾아보면 「시스템이 시작하면 자동적으로 기동되는 속성」이라고 설명, 좀처럼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또 지난 93년 처음으로 발간한 후 지난 97년까지 9번이나 증보판을 낸 성안당의 「컴퓨터용어사전」에서 「CD-ROM」이라는 단어를 찾아보면 「오디오용 콤팩트디스크와 같은 지름의 디스크에 음성정보 대신 부호정보를 기록해 판독전용 메모리(ROM)로 한 광디스크」라고만 적고 있다.
이쯤 되면 만만치 않은 비용인 2만∼3만원씩이나 부담하면서 두꺼운 컴퓨터용어사전을 살 필요가 있는지 되묻고 싶어진다.
출판사 관계자들이 추산하는 국내 컴퓨터 출판시장 규모는 약 1500억원 수준. 이 정도 시장규모에 걸맞는 컴퓨터사전이 국내에서도 한시바삐 나오기를 독자들은 간절하게 바라고 있다.
<서기선기자 kssuh@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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