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빗이나 컴덱스처럼 큰 전시회는 준비하는 데만 6개월 이상 걸립니다. 전시일이 다가오면서부터는 야근은 물론 철야도 다반사죠. 한번 전시를 끝내고 나면 3∼4㎏씩 몸무게가 빠져요.』
LG전자에서 해외전시를 담당하고 있는 유정화 대리(27)의 말이다. 유 대리의 업무는 해외 유명 전시회에 참가해 LG전자의 제품을 널리 홍보하는 것. 해외전시를 맡은 지 올해로 4년이 되는 유 대리가 그동안 참여한 전시회는 7건. 그리 많지 않은 경험이지만 유 대리는 사내외에서 베테랑 전시기획자로 통한다. 국내 기업들이 독자적인 부스를 가지고 세계적인 대형전시회에 참여하기 시작한 역사가 얼마 안된 탓이기도 하다.
『전시회는 수천개의 업체가 준비한 내용을 동시에 한 장소에서 선보이기 때문에 우열이 확실하게 드러난다』고 말하는 유 대리는 『항상 두려운 마음으로 전시회 개막일을 맞는다』고 털어놓는다.
유 대리가 그동안 쌓은 전시기획의 전가를 발휘한 것은 지난해 독일에서 개최된 세빗전시회 때. LG전자는 주력상품으로 내세운 윈도CE 기반의 핸드헬드PC를 홍보하기 위해 부스 앞에 대형 모형을 설치하고 관람객들이 작동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했다. 이 모형은 관람객들의 인기를 끌어 국내외 언론은 물론 독일 국영방송을 통해 소개되는 등 호응을 얻었다. 또 전시주관사와 독일 전문지가 공동으로 뽑은 「인기부스(Popular Stand)」에 선정되는 영광을 안기도 했다.
『전시기획은 정해진 시간 내에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에 대한 중압감이 아주 커요. 예상치 않게 발생하는 사고에 대해 신속히 대처하는 능력도 필요하지요. 아무리 꼼꼼하게 준비해도 어디선가 문제가 발생하기 마련이거든요.』
지난 97년 세빗전시회 때는 새벽 6시까지 부 스가 제대로 설치 안돼 애를 먹었다. 설치를 맡은 현지기업의 기술자들이 『새벽까지 일할 수 없다』며 일방적으로 철수해버렸기 때문. 결국 유 대리는 직원들과 함께 배선처리 등 마무리작업을 해야 했다. 공항에서 바로 현장으로 직행했기 때문에 호텔을 잡지 못해 잠도 차에서 해결했다.
『최근의 전시회는 규모면에서 더욱 커지고 첨단 미래 이미지를 강조하는 경향입니다. 또 관람객들이 부스의 구석구석까지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세심한 배려를 하지요.』
외국의 다국적기업들과 경쟁해야 하는 유 대리는 세계적 추세나 유행에 뒤떨어지지 않기 위해 수시로 해외전시회 자료를 수집하고 길을 걷다가도 독특한 조명이나 디스플레이가 있으면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어떻게 전시회를 개최하느냐에 따라 해외시장의 평가가 달라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외국의 대형기업들에 비해 예산이 넉넉지 못한 것은 언제나 아쉬움으로 남는다.
『언젠가 자금에 구애받지 않고 외국의 유명기업들 못지 않은 대규모 전시를 맡아 진행해보고 싶다』고 말하는 유 대리는 인터뷰가 끝나자마자 『99년 세빗전시회 준비를 해야 한다』며 독일행을 서둘렀다.
<장윤옥기자 yoja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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