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배속된 군부대는 서울의 도심 속에 있었다. 외부에서 보면 그곳이 군부대인지조차 알 수 없는 평범한 건물에 높은 담으로 둘러싸인 조그만 연병장이 있을 뿐이었다. 훈련받을 때와는 달리 나는 단번에 사회 속으로 돌아온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외부로 느껴지는 것에 불과했고 실제는 엄격한 규율과 심한 기합으로 긴장을 풀 수 없었다. 특히 아침 저녁으로 있는 내무반의 점호는 살벌하기조차 했다. 소대장 송재섭은 부하들에게 단 한 번도 기합을 주는 일이 없었다. 다만 선임하사관과 고참들이 번갈아 가면서 긴장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선임하사관 배설상 중사는 나이도 들었지만 잔소리가 많았다. 그는 신참을 모아놓고 특별히 훈계하는 말이 있었다.
『이 새끼들, 잘 들어라. 너희들은 특별히 선발된 요원이다. 분야에 따라서는 민간인과 군인을 동시에 사찰할 수 있는 수사권이 부여되어 있다. 그렇다고 건방을 떨면 안된다. 그럴수록 겸손의 미덕을 배워야 한다. 알갔어, 간나 쌔끼들아.』
그러면 우리는 차렷 자세를 하면서 힘차게 대답을 해야 한다. 대답이 시원치 않으면, 아니, 대답이 아무리 우렁차도 그것이 시원치 않다고 하면서 엎드려 뻗치게 해서 엉덩이를 패는 것이다. 아니면 원산폭격을 시키거나 고추잠자리를 타게 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고문이라고 해도 별로 다를 바 없이 곤혹스런 것이었다.
그러나 일단 아침 점호가 끝나고 식사를 마치면 자유시간이 잠깐 주어지고 다음에 각기 맡은 담당부서로 출근을 했다. 담당부서라고 하지만 멀리 가는 것이 아니고 대부분 부대 영내에서 일을 봤다. 더러는 사복차림으로 부대를 빠져나가 작전에 참여한다. 작전에 참여하는 병사들은 무슨 출판사 영업부 신분증이라거나,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무슨 잡지사 기자증을 챙겼다.
『이봐, 자네도 기자야? 주간지 한나래가 있기나 있어?』라고 놀리면 그는 실제로 정기적으로 나가는 잡지책을 흔들어 보이는 것이었다. 실제 잡지가 간행되고 있지만 그것은 대외적인 눈가림이고 실제는 작전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무엇을 하는지 부서가 다른 우리로서는 짐작을 할 수 없고 묻지 않는 것이 불문율로 돼 있었다.
내가 식사를 마치고 출근하는 곳은 영내에 있는 통신반이었다. 내가 맡은 것은 통신 관련 소프트웨어 개발이었다. 군 정보기관에서 일한다는 것은 자의적인 것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나는 군에 들어와서도 컴퓨터를 만질 수 있다는 것을 대단한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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