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벤처기업 (127)

 문 사장은 컴퓨터가 무엇이든지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틀린 생각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맞는 말은 아니었다. 컴퓨터는 만능이지만 반드시 인간을 뛰어넘지는 못할 것이다. 모차르트의 교향곡 같은 천재적인 음악을 컴퓨터가 창조하리라고 기대할 수는 없었다.

 그곳에서 만난 백화점의 문 사장은 그 후에 찾아오라고 했지만 나는 가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에 대한 인상은 강하게 박혀서 문득 문득 떠올랐다. 그날 밤에 음악과 컴퓨터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지만 나 역시 술에 취했는지 다음날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잊어버렸다. 보안등에 비친 잔디, 향나무와 단풍나무, 그리고 호숫가에 있는 키 큰 자작나무가 하얗게 비쳤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수면이 잔잔한 바람에 일렁였는데 그것이 불빛에 비쳐 파도치는 것처럼 움직였다. 나무 그림자 사이로 움직이는 사람들의 그림자, 피곤한 얼굴로 억지로 웃는 임원들, 연회에 참석했으나 윗사람들의 눈치를 살피는 신입 엔지니어들, 안하무인으로 설치면서 술을 마셔대던 군복 입은 배용정 선배. 이러한 것들이 나의 기억 속에 새겨졌다.

 다음날 신문기자가 나를 찾아왔다. 텔렉스 자동교환기의 개발은 획기적인 것이라고 하면서 소감을 물었고 그와 같은 것을 착안한 동기를 물었다. 나는 어떤 동기가 있어서 착안을 했다거나 텔렉스 교환기의 필요성 때문에 그 프로젝트를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회사에서 지시를 내린 것에 불과했다. 다른 기술자들이 해야 할 일을 별로 경험도 없는 내가 하게 된 것은 당시 기술자들이 거의 모두 회사를 떠났기 때문이었다. 사장이 시켜서 했을 뿐이다. 물론 개발하겠다고 나선 자발적인 의도는 있었지만 이미 테마가 주어진 프로그램이었다. 내가 그렇게 말하자 기자는 매우 실망하는 표정이었다.

 『나는 컴퓨터 초보자입니다. 프로그램을 개발해서 상품화하는 것은 컴퓨터 세계에서 흔한 일입니다. 지금도 세운 전자상가에 가면 새로운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는 많은 기술자들이 있습니다. 비록 그들이 리버스엔지니어링을 하는 입장이지만 그것도 새로운 창조지요. 나를 기사화하지는 마십시오. 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통신장치의 프로그램 개발 기사는 대문짝처럼 나왔다. 그리고 그것이 나의 인생에 또 한 번의 계기를 가져다 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나는 그해 겨울에 군에 입대했다. 그리고 그 신문기사 때문인지 훈련을 마치고 군 정보기관 전산실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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