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신문사가 주관하는 「벤처지원포럼」(회장 오해석·숭실대 교수)이 지난 4일 본사 회의실에서 정부 당국자를 비롯, 업계·학계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벤처기업 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의 원활한 운용을 위한 제언」이란 주제로 토론회를 가졌다. 특별조치법에서 미처 고려하지 못했던 사안들을 중심으로 논의한 이날 모임에서 참석자들은 정부가 지원 일변도의 벤처정책을 펴게 되면 우리 벤처는 망할 수도 있을 것이라며 시장경쟁 원리가 하루빨리 도입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참석자들은 벌써부터 일부 벤처기업에서는 창업가적 모험정신이 퇴조하고 있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며 이를 제도적으로 막을 수 있는 방안도 강구돼야 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날 있었던 정책발표와 토론내용을 요약, 정리한다.
<편집자>
△오해석(사회·숭실대 교수)=지난해말 벤처기업 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이 획기적으로 개정돼 예비 벤처기업가들로부터 무척 환영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법이란 만드는 것보다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 아무리 공을 들여도 보는 시각에 따라 보완할 점이 많은 게 사실입니다. 토론에 앞서 중기청의 이계형 벤처기업국장으로부터 이 법의 주요 개정내용을 들어보았습니다. 이 특별법이 제대로 효과를 발휘할 수 있도록 의견을 기탄없이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러면 먼저 법 개정으로 상당한 변화가 예상되는 대학쪽 얘기를 들어볼까요.
△김종득(KAIST 신기술창업지원단장)=신기술창업지원센터를 운영하면서 가장 곤혹스러운 것이 입주신청업체 중 옥석을 구분하는 일입니다. 벤처기업의 정의나 범위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입주하려는 기업이 대부분 기업형태를 갖추지 못한 점이 문제입니다. 또 실험실 창업을 허용했지만 다른 법에 걸리는 사항이 너무 많습니다. 대학내 공장등록 허용도 요즘 아웃소싱이 잘 발달돼 공장이 필요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융자나 인증을 받을 때 공장등록증이 필요한데 이럴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잘 모르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안준모(건국대 경영정보학과 교수)=대학 창업지원센터의 소장을 대학교수가 맡지만 특별한 인센티브가 없습니다. 지원센터 일을 수업시간으로 인정하든지 겸임교수로 인정하는 등의 혜택이 필요합니다.
또 대학가에 창업지원센터가 너무 많아 입주기업이 모자랄 경우도 있는데 대기업이 분사할 경우 대학 창업센터로 유치할 수 있도록 여건개선이 필요합니다. 대학에는 고급인력의 약 70%가 있어 기업 노하우와 대학을 연결할 경우 단기효과가 크다고 봅니다.
특히 창업에만 신경쓸 뿐 지원서비스 기능이 취약한 것도 개선돼야 합니다. 그래야 양적·질적 벤처기업 창업지원 효과가 나타납니다. 미국의 경우 입주기업에 대한 법률지원 등 다양한 서비스와 인프라를 지원합니다.
△배명진(숭실대 창업지원센터 소장)=개정 벤처특별법이 대학내 벤처창업에 초점을 두었다고 하지만 대학의 입장에서 보면 거리감 있는 조항들이 많습니다. 무엇보다 교수라는 직함을 포기하고 창업에 선뜻 나서기엔 매리트가 없습니다. 교수의 주 업무가 교육과 연구인데 대학 자체가 창업관련 활동을 연구로 인정하려 하지 않습니다.
특히 특허와 같은 지식재산권을 연구실적으로 잡아주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실험실공장 역시 현 대학여건에서는 부족한 게 너무 많습니다. 대학내 1실험실 1창업만 유도해도 1만개 벤처가 탄생할 것이라고 하는데 현재는 교수 1명당 1연구실이 있는 게 아닙니다. 또 연구실이라해도 비좁고 열악하며 도시형공장 등록을 할 수 있도록 허가하는 학교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대학이 창업부터 기업형태를 갖추기까지 모든 단계를 다 지원할 수 없습니다. 창업아이템 발굴에서 시작품 개발까지 가능할 뿐 나머지는 기업의 몫입니다. 이를 위해 분위기 조성과 제도적 보완이 필요합니다. 대학의 특징은 전문성·소자본·연구력 등입니다. 따라서 에인절클럽을 학교 주축으로 구성, 대학이 에인절클럽의 구심점 역할을 해야 합니다.
△김 단장=동감합니다. 한 벤처기업이 성장하기까지 단계별로 차이가 큽니다. 한 예로 창업 3년 이내로 기술개발단계에 있는 업체는 매출이 없고 지출만 있어 신용대출을 받지 못합니다. 조금만 더 투자하면 성장할 수 있는데 그렇지 못합니다.
따라서 성장단계별 차별적 지원이 필요합니다. 창업지원센터를 운영하다보면 입주기업이 어느 정도 지나 창업가적 모험정신이 사라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너무 지원 중심으로 흐르다 보니 사업가 정신이 사라지는 것이지요.
△사회=교수님들의 의견 중에는 법률로 해결되는 것도 있고 안되는 것도 있는 것 같습니다. 중기청의 견해를 들어보죠.
△이계형(중기청 벤처기업국장)=창업초기 기업들이 정상궤도에 오르기까지는 어려움이 많습니다. 그래서 이번 개정법에는 창업초기 기업도 국립기술품질원·기술신보 등으로부터 기술을 평가받아 벤처기업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실험실창업 활성화 부분은 지난달 중순 교육부 등 관계부처와 협의했으며 앞으로도 계속 관심을 갖고 추진해 나갈 예정입니다. 벤처기업이 잘 되려면 매니지먼트시스템 등 주변여건이 좋아야 하는데 현재 이 점이 취약합니다. 도우미 개념의 매니저제도를 통해 보완하겠습니다. 특허부분은 특허귀속문제 등 실무진에 연구토록 지시, 보고서가 완성돼 조만간 긍정적인 성과가 나타날 것으로 봅니다. 창업초기 기업에 대한 지원은 될 수 있으면 투자 중심으로 가야 하는데 에인절제도가 활성화되지 않아 부득이 융자로 가는 것이니 이해하십시오.
△김 단장=융자와 관련, 창업초기 기업들은 투자를 선호하는 기업과 융자를 선호하는 기업들로 나눠집니다. 투자를 싫어하는 기업들은 경영권 방어를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이 국장=그렇다면 정부지원은 융자형태로 가고 투자는 에인절 활성화로 유도해 나가는 방법이 나을 수 있다는 판단입니다. 특히 기술거래소를 활성화해 자금을 순환하는 방법을 고려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창업가 정신이 퇴색돼 가는 부분은 모럴헤저드의 한 유형인 것 같습니다.
△사회=이번엔 직접 벤처기업을 경영하는 분과 자금원인 벤처캐피털의 입장을 들어볼까요.
△김택진(엔시소프트 사장)=우선 창업 2년된 기업 경영자로서 자본시장이 너무 거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기업이 어려우면 투자가들이 손해를 보는 게 기본인데 우리나라 벤처캐피털은 기업이 잘되면 고수익을 요구하고 어려우면 곧바로 투자비용을 회수하려 합니다. 그래서 벤처기업들은 외부 자본도입을 두려워합니다. 또 스톡옵션 부여대상 중 대주주 제외는 이해하기 힘든 부분입니다.
또 코스닥등록 이전의 스톡옵션이 명확하지 않습니다. 소니의 경우 등록 이전에 사람가치를 인정하는 제도가 있습니다. 등록 전 인센티브에 대한 법적조항을 마련하는 것도 생각해 봄직합니다.
△이 국장=좋은 말씀입니다. 하지만 스톡옵션 대상에 대주주를 제외하는 것은 우리 투자문화입니다. 등록전 스톡옵션 권리를 매매하는 이른바 워런트부분은 아직 우리나라에 개념정리가 안된 부분입니다.
△김 사장=현재 창업자들은 대부분 기술자들입니다. 빌 게이츠도 마이크로소프트 지분 20%에 해당하는 스톡옵션이 없었다면 개인의 부귀영화는 물론 회사도 그리 크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인규(무한기술투자 사장)=이번에 개정된 특별법을 벤처캐피털리스트의 입장에서 보면 너무 정부 주도의 공급자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생각입니다. 벤처는 시장에서 경쟁을 통해 성장하도록 해야 합니다. 극단적으로 정부가 지원을 계속하면 벤처는 망합니다. 세계적으로도 정부가 벤처기업을 지원해서 성공한 나라는 없으며 벤처특별법도 우리나라에만 있는 유일한 법으로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법은 환경이나 분위기를 조성하고 동기를 부여하는 쪽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특별법의 주요 내용 중 하나인 한국벤처조합은 벤처육성의 성공이 60%가 좌우될 정도로 중요한 사항이라 생각합니다. 이스라엘 요즈마펀드에 착안한 것 같은데 요즈마는 철저히 수요자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경쟁원리가 도입돼 있습니다.
따라서 한국투자조합도 시장경쟁원리를 도입해야 합니다. 벤처육성을 위해선 창투사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외국은 창투사가 금융업종이 아니라 일반회사로 분류돼 있는데 우리나라는 금융업종도 아니게 어정쩡하게 분류, 규제가 너무 많습니다. 따라서 창투사의 최저 자본금은 10억원 수준 이하로 낮추고 에인절 조세혜택을 확대하고, 투자손실에 대한 인정도 고려해야 합니다.
△이 국장=이번 특별법 개정의 포인트가 공급자나 수요자 논리보다 벤처기업을 육성하는 데 필요한 인프라와 사회간접자본(SOC)이란 점을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예컨대 실험실창업 허용, 교수나 연구원의 벤처기업 임직원 겸직 허용, 조세감면 등이 그렇습니다. 법 시스템보다는 지원문제인데 미국·이스라엘·대만 등은 이미 꽤 오래전에 벤처기업을 국가적으로 육성했으나 우리나라 벤처역사는 이제 1, 2년에 불과할 정도로 일천합니다. 때문에 다른나라에 비해 인프라 구축이 절박한 상황입니다. 앞으로 기반이 확고히 구축되면 시장이나 경쟁논리는 자연스럽게 접목될 것입니다.
투자조합 부분은 우선 운영자체를 완전히 민간에 맡긴다는 점을 밝혀 드립니다. 정부는 다만 재원조달에만 신경쓸 것입니다. 연기금에 대한 우려는 투자조합 출자자 대상을 연기금 외에도 중진공·금융권 등 여러 곳으로 다변화해 놓았기 때문에 문제될 게 없습니다.
△사회=이번엔 법률전문가의 입장에서 이번 개정 벤처기업특별법이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선 필요한 점이 무엇인지 알아보죠.
△배재광(벤처법률지원센터 소장)=개정법에 명기된 벤처기업 범위 중 창투사 투자나 주식인수 총액이 백분율로 돼 있는데 그 개념이 명확하지 않습니다. 가령 100분의 20이라면 자본금의 20%인지 액면가인지, 프리미엄은 포함되는 것인지 명확하지 않습니다. 만약 액면가라면 비율을 좀 낮추었으면 합니다. 코스닥시장의 활성화를 위해 노력한 흔적이 보이는데 현실적으로 코스닥시장에 등록하면 바로 벤처기업으로 인정해 준다면 코스닥시장도 활성화되고 벤처기업도 육성하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기대됩니다. 그리고 기업의 자금순환을 원활히 하려면 M&A를 활성화해야 합니다. 투자가 물흐르듯 회수돼야 돈이 벤처기업에 몰리고 그래야 좋은 벤처기업이 늘어납니다. 그러기 위해선 다양한 프로그램과 로직, 시스템 구축이 선행돼야 합니다. 특히 벤처기업가나 엔지니어들의 병역특례 부분은 적극 고려해야 합니다. 기발한 아이디어와 두뇌회전이 필요한 때에 군대를 가는 것은 벤처산업 측면에서 보면 큰 손실입니다.
△이 국장=코스닥등록기업을 벤처기업으로 바로 인정하는 것은 문제가 좀 있습니다. 코스닥등록기업이면서 벤처기업이 아닌 기업이 적지 않습니다. 다만 투자회수가 어려운 것이 문제인데 외국자본의 유입과 금융기법의 개선으로 점차 투자회수가 쉬워질 것으로 기대합니다. 병역특례부분은 관계부처와 계속 협의해 나갈 계획입니다.
△사회=병역특례부분은 중기청의 문제가 아니라 병무청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변리사의 의견을 들어볼까요.
△김종윤(변리사)=변리업무를 하다 보면 기술을 가진 자와 자본을 가진 자 간에 싸우는 일이 많습니다. 자본을 가진 자는 벤처투자를 사채나 부동산 투기쯤으로 생각하고 기술을 가진 자는 자신의 기술이 대단한 것인 줄로 착각을 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매년 수십만건의 특허가 출원되지만 제대로 된 특허기술은 얼마 안되는 게 우리의 현실입니다. 미국의 발명은 세계적인 발명이지만 우리의 발명은 개량이나 개조한 것이 많습니다. 그런데다 에인절보고 투자하라는 것은 어폐가 있습니다.
<정리=구근우기자 kwkoo@etnews.co.kr 이중배기자 jblee@etnews.co.kr>
경제 많이 본 뉴스
-
1
챗GPT 검색 개방…구글과 한판 승부
-
2
SKT, 에이닷 수익화 시동...새해 통역콜 제값 받는다
-
3
올해 하이브리드차 판매 '사상 최대'…전기차는 2년째 역성장
-
4
갤럭시S25 '빅스비' 더 똑똑해진다…LLM 적용
-
5
테슬라, 3만 달러 저가형 전기차 첫 출시
-
6
“팰리세이드 740만원 할인”…車 12월 판매 총력전 돌입
-
7
정부전용 AI 플랫폼 개발…새해 1분기 사업자 선정
-
8
곽동신 한미반도체 대표, 회장 승진…HBM 신장비 출시
-
9
AI 기본법 법사위 통과…단통법 폐지·TV 수신료 통합징수법도 가결
-
10
올해 한국 애플 앱스토어서 가장 인기있는 앱은?
브랜드 뉴스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