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시간이 부족하면 다른 기술자들을 지원해줄까?』
『다른 지원자가 필요한 것과는 다릅니다. 일의 성격으로 보아 저 혼자 해내겠습니다. 저는 출퇴근하는 시간도 아깝습니다. 시간이 없어서 전문대학 야간부에 나가던 것도 포기했습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인데요. 앞으로 저의 연구실에서 기거를 했으면 합니다. 사장님의 허락을 얻고 싶습니다.』
『하숙방을 회사로 옮기겠다는 뜻인가?』
『하숙도 아니고 서울 근교에서 자취를 하고 있습니다. 자취방이 회사와 멀리 떨어져 있다 보니 출퇴근하는 시간도 많이 걸리고요.』
『그건 자네 편한 대로 해.』
나는 사장에게 허락을 얻기 전에도 자주 회사에서 잠을 잤다. 그럴 때는 밤늦게까지 컴퓨터를 하고 있었고, 자정이 넘어 통행금지 때문에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회사에서 잤던 것이다. 물론 회사에 있을 때는 거의 밤을 새우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해 봄이 되면서 나는 자취방을 청산하고 회사로 숙소를 옮겼다. 회사라고 해야 내가 사용하는 연구실에 짐을 풀어놓는 것이 전부였다. 소지품이라고 해야 책과 약간의 옷이 전부였다. 책장을 벽 한쪽에 만들어 넣고 침대 아래에 옷상자를 넣어 두었다.
그때부터 나는 미니 컴퓨터로 밤을 새울 수 있었고 문 밖의 고목나무에서 들리는 까치 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 깊은 밤에 울리는 할렐루야 하고 고함치는 통성기도 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었다.
통행금지가 있었던 시절(80년까지 밤 12시가 되면 통행이 금지되는 제도가 있었다)에 자정이 되면 회사 철문이 닫혔다. 어차피 밖으로 나가지 못하지만, 나는 컴퓨터에 매달려 시간을 보내는 것이 즐거웠다. 더러는 자정까지 컴퓨터 프로그램을 연구하다가 옥상으로 올라가려고 복도로 나갔다. 나는 가끔 옥상으로 올라가 서울의 밤 풍경을 바라보았다. 통금시간이지만 거리의 가로등 불빛은 현란했고 불 꺼진 창은 어둠에 덮여 있었다. 자정이 되면 승강기의 전원도 꺼진다. 그러면 나는 계단 출구로 가서 한 계단씩 올라간다. 그런데 한 층을 올라가고 있는데 복도에서 깔깔거리는 여자 웃음소리가 울렸다.
깊은 밤에 빌딩의 복도에서 울리는 여자 웃음소리를 듣자 소름이 오싹 끼쳤다. 그 시간에 여자가 있을 리가 없었기 때문에 소름이 끼쳤다. 그 웃음소리는 아늑하게 울려 왔지만 흐느끼는 울음처럼 들렸고 마치 간지럼을 타듯이 간헐적으로 울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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