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재미있고 신기한 과학이야기 (46);CPU의 탄생

 지금 30대 초반 정도의 연령이라면 「광석 라디오」를 기억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요즘은 과학이나 기술 공학에 관심이 많은 어린이라면(사실은 그렇지 않은 아이들까지도) 컴퓨터를 만지기 십상이지만 7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전자부품으로 이런 저런 장치를 만들어보는 것이 큰 인기를 끌었다.

 70년대 후반에는 동네 문방구에서 광석 라디오 키트를 팔기도 했다. 「광석」이란 검파용 게르마늄 다이오드를 말하는 것인데 이것을 이용하면 공기중의 방송 전파를 포착해 인간이 귀로 들을 수 있는 소리로 바꿀 수 있다. 검파용 다이오드에 크리스털 이어폰을 연결하면 라디오 방송이 들렸다.

 더욱 신기한 현상은 광석 라디오는 별도의 전원이 필요 없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서 라디오 방송국이 존재하는 한 건전지를 넣어주지 않아도 영원히 사용할 수 있는 영구 라디오였던 것이다.

 조립식 장난감 수준이었던 광석 라디오 단계가 지나면 같은 취미를 가진 친구들끼리 청계천의 전자부품 상가를 뒤지고 다니며 이런 저런 부품들을 사모아 여러 가지 장치들을 만들었다.

 전기 인두로 열심히 납땜질을 해서 발광 다이오드 두 개가 번갈아 깜박이는 윙커(winker)를 만들기도 하고, 빛의 밝기에 따라 전기저항이 변하는 황화카드뮴(CdS) 소자를 이용해 손을 휘저으면 괴상한 소리를 내는 장치도 만들고, 또 일반 라디오에서 내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무선 마이크를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풍경은 80년대 들어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70년대 후반부터 미국에서 보급되기 시작한 마이크로 컴퓨터는 80년대 들어 우리 나라에도 광범위하게 보급되었고 이미 80년대 중반에는 청계천 상가에서도 조립식 컴퓨터를 주로 취급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마이크로프로세서, 또는 CPU라고 불리는 조그만 칩의 등장으로 야기된 것이다. 오늘날 PC의 가장 핵심적인 부품인 CPU는 71년에 처음 등장해 80년대에 8비트 시대를 거쳐 XT컴퓨터용의 8086칩과 AT컴퓨터용의 80286칩으로 계속 발전했고, 잘 알려져 있다시피 32비트의 386, 486칩을 거쳐 펜티엄에 이르렀다.

 CPU칩은 연산과 논리회로를 하나의 실리콘 칩에 새겨 넣은 것이다. 기억이나 입출력 및 프로그래밍에 관계된 것은 별도의 다른 칩들에 넣어 보조적으로 사용한다. CPU의 탄생은 67년 미국 인텔사의 테드 호프라는 젊은 엔지니어의 머리에서 문득 착상된 아이디어가 시발점이었다. 그 결과 71년에 가로, 세로가 각각 3, 4㎜인 최초의 CPU칩이 등장했는데, 그 안에는 자그마치 2천2백50개의 트랜지스터가 들어 있었다. 손톱보다 작은 이 칩은 그러나 1946년에 만들어진 세계 최초의 컴퓨터 「에니악(ENIAC)」과 맞먹는 계산 능력이 있었으며, 또한 60년대의 시가 3만달러 짜리 IBM컴퓨터와 같은 일 처리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이렇게 시작된 CPU의 발달이 그후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는 잘 알려져 있는 대로다. 인텔과 모토롤러사를 비롯한 많은 회사들이 CPU 개발과 생산에 주력하였고 시장 주도권을 놓고 치열한 쟁탈전도 벌어졌다. 현재 PC시장은 인텔사의 CPU를 장착한 IBM형 PC가 대세를 점하고 있지만 CPU는 이미 PC뿐만 아니라 우리 눈에 보이는 사실상 모든 곳에 파고들어 있다. 모든 종류의 가전제품은 물론, 자동차 부품에도 CPU가 들어간다. 영국의 권위 있는 경제잡지인 「이코노미스트」가 70년대에 「컴퓨터의 용도가 얼마나 될까 묻는 것은 전기의 용도가 얼마나 될까 묻는 것과 같다」고 전망했던 통찰력에 놀랄 뿐이다.

<박상준·과학해설가>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