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재벌의 영상사업 "발빼기"

 재벌그룹들이 잇따라 영상사업에서 발을 빼고 있다. 삼성·대우·현대를 비롯한 대기업들이 정부의 그룹사 구조조정 요구와 부실사업 정리 차원에서 영화·비디오 등 영상업종을 그룹에서 떼어내 분사 또는 매각하기로 결정하고 본격적인 영상사업 해체 수순을 밟고 있다는 소식이다.

 삼성그룹은 최근 그동안 그룹 영상사업을 전담해온 삼성영상사업단을 부문별 매각 또는 통폐합을 통해 사실상 해체해 수직계열화하기로 하는 등 영상사업에서의 철수작업을 본격적으로 진행중이라고 한다. 조만간 삼성영상사업단의 영화·비디오·음악·케이블TV 등 4개 사업부문을 외국 기업 또는 국내 기업에 매각하거나 분사를 추진할 계획인데, 영화와 음악 부문은 구체적인 청산 및 정리 방침이 섰고 케이블TV와 비디오사업 부문도 국내외 매각 또는 일정기간의 지급보증을 통한 분사 방안을 마련중이라고 한다.

 삼성영상사업단은 이에 앞서 최근 명예퇴직 등을 통해 직원수를 30% 줄이고 음악·영화사업 부문을 대대적으로 통폐합했다.

 삼성의 영상사업 철수는 지난 95년 영상산업의 선진화를 모토로 본격 참여한 지 만 3년여만의 일이다.

 이에 앞서 대우그룹도 (주)대우를 통해 추진해온 영화·비디오·케이블TV 등 영상사업에서 완전 철수하기로 결정, 분사를 단행했다. 지난 96년 대우전자로부터 사업을 이관받은 (주)대우 영상부문은 그동안 쌓아온 노하우에도 불구하고 누적적자와 구조조정의 바람을 견디지 못하고 분사된 영상사업 부문은 협력회사인 세음미디어로 넘어갔고, 케이블 관련사업은 당분간 운영하되 외국 기업에 매각할 방침이다. 대우의 영상사업 철수는 지난 86년 대우전자를 통해 참여한 이래 12년만의 일이다.

 또한 현대그룹은 현대방송의 영상사업팀을 작년 말 완전 해체하고 극장사업의 일환으로 추진해온 씨네플러스를 매각하는 등 1단계 구조조정을 마친 데 이어 곧 영상사업에 대한 추가 구조조정을 단행할 방침이라고 한다. 90년대 중반에 일찌감치 영상사업에서 철수한 LG그룹까지 포함한다면 4대 그룹이 모두 시차는 있지만 영상사업에서 발을 뺀 것이다.

 이들 대기업의 영상사업은 하나같이 기존 영상업체들로부터는 『대기업이 영화·비디오사업까지 하느냐』는 비난을 받았고, 내부에서조차 막대한 적자로 인해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였다. 그러다가 90년대 후반 들어서는 이들 대기업과 국내 중소 전문업체와의 연계·협력체제가 갖춰지고 특히 반도체 경기의 호황에 힘입어 막대한 투자를 감행함에 따라 「대기업의 역할론」까지 나오는 등 기존 업체들과의 관계가 호전되는가 싶었는데 때아닌 IMF관리체제라는 태풍을 만나 이같은 결과를 맞은 것이다.

 영상분야의 「거품」을 형성시킨 장본인이라는 비난 못지 않게 이들 대기업이 국내 영상산업계에 기여한 바도 적지 않다. 자본력이라는 「덩치」를 앞세워 외풍에 대한 바람막이와 국내 중소 전문업체에 대한 자금줄 역할을 했고 특히 산업을 체계화한 공은 결코 과소평가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일본문화가 개방되고 미국의 스크린쿼터 축소 요구 등으로 영상업계가 어려움에 처해 있는 시점에서 이들 대기업의 잇따른 퇴출까지 겹침으로 인해 발생할 것으로 보이는 복잡다단한 과도기적 위기상황을 효과적으로 헤쳐나갈 수 있는 지혜를 모으는 일이다.

 철수하는 대기업들은 우리 영상산업의 대외신인도가 영향받지 않도록 잘 매듭을 지어야 할 것이며, 정부 또한 대기업이 빠진 전문업체 중심의 국내 영상산업 환경에 맞는 육성책을 개발하는 데 힘써야 할 것이다.

 한동안 「대형」노릇을 자처했던 대기업들이 아예 사업을 접거나 여느 중소업체와 같은 「소규모 사업자」로 내려앉음에 따라 이들 대기업과 관계를 맺어왔던 중소업체들이 위축되고, 이 틈을 타 공백을 외국 업체들이 고스란히 차지해 국내 영상산업이 대외종속된다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하지 않도록 힘을 모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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