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벤처기업 (95)

 PC공급업체로 유일하게 국산품을 생산하던 곳은 삼보전자였다. 외국제품으로는 애플이 가장 활발한 판매망을 가지고 있었다. 애플의 총대리점 한국소프트웨어는 나중에 삼보컴퓨터에 흡수되었다. 바이트숍 방식으로 판매망을 구축한 엘렉스가 있었다. 이 총대리점 역시 삼보컴퓨터에 흡수되었다. 엘렉스는 판매망이었던 바이트숍 방식으로 일반 가전제품처럼 거리의 상점에서 컴퓨터를 판매했다. 프랜차이즈(연쇄점) 형태로 발전한 이 판매방식의 대표적인 예가 청계천 전자상가의 형성이었다.

 청계천 컴퓨터 상가를 일궈낸 초창기 업체들은 희망전자, 석영전자, 홍익컴퓨터, 로얄컴퓨터, 에이스컴퓨터, 골든밸, 한국마이컴, 브레인컴퓨터 등이었다. 오디오 조립 키트가 몰려 있는 청계천상가 3층에 바이트숍 형태의 점포를 내고 M6800A라든지 Z80의 본체를 조립했다. 주로 「애플2」의 복제품이었다.

 나는 청계천상가에서 마이크로프로세스, 주기판, 플로피디스크 드라이브, 카세트 리코더, 입출력용 인터베이스, 모니터를 구입했다. 이런 것들은 대만과 일본, 그리고 미국에서 구입한 외제들이었다.

 월급을 타면 돈을 아껴서 컴퓨터 부품을 하나씩 사서 모았다. 그렇게 해서 완제품을 만드는 데 필요한 부품을 모으는 데도 6개월이 걸렸다. 그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다.

 겨울은 몹시 추웠다. 그 추운 겨울에 나를 지탱해준 것은 오로지 컴퓨터였다. 컴퓨터 앞에 앉으면 혼탁한 마음이 수도자처럼 맑아졌고 애인을 바라보는 것처럼 즐거웠다. 산비탈 음지에 얼음이 녹고 있을 일요일 오후에 고등학교 때 친구 두 명과 선배 배용정이 내가 자취하는 집을 찾아왔다. 두 명의 친구는 내가 컴퓨터 회사에 취직돼 서울로 올라왔을 때 축하연을 베풀어 주었던 김용식과 문춘호였다. 그들은 저마다 여자친구를 데리고 나타났다. 대학에 다니는 문춘호의 여자친구는 두어 번 본 일이 있지만 김용식의 애인은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김용식은 곧 군에 입대한다고 했다. 나는 지저분한 방안을 황급히 치웠다. 친구의 여자들은 한쪽에 있는 조립된 컴퓨터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김용식이 군에 입대한다는 말을 듣고 내가 그에게 물었다.

 『언제 입대하니?』

 『다음달에 입대해.』

 『배 선배와 같이 입대하게 생겼군.』

 배용정은 두 해 선배였지만 전문학교를 다니는 동안 연기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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