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벤처기업 (78)

 3층으로 올라가면 빈방과 체육시설이 있다. 빈방은 집안 살림을 돌보는 가정부가 쓰는 방이었다. 가정부는 두 명인데 한 명은 나이가 든 중년이고 다른 한 명은 스무 살 전후로 보이는 처녀였다. 체육시설이 있는 방에는 탁구대와 당구대와 함께 각종 운동기구가 있다. 옥상은 수영장을 만들어 놓았는데 한때 공중 촬영으로 사진이 찍혀 신문지상에 올라 여론이 나빠지자 폐쇄했다고 한다. 그래서 수영장을 지하로 옮겼는데 지하실로 내려가면 조금 작기는 하지만 수영장이 있고 다른 체육기구들이 놓여 있었다. 그 수영장과 체육시설을 나보고 사용하라고 했지만 사양했다.

 아이들은 집에 있는 승용차로 학교까지 바래다 준다. 홍 박사의 남편 김 회장은 일로 바빠서 거의 집에 들어오지 않으며 해외와 지방으로 나가 있다. 김 회장은 섬유계열의 재벌인데 창업자이기도 했다. 이제 나이 육십이라고 하니까 창업자로서는 비교적 젊은 세대였다. 본사는 서울에 있지만 공장은 대구에 있었다. 김 회장은 집에 오더라도 밤 늦게 귀가하고 아침 일찍 나간다고 했다. 그래서 거실에 있는 김 회장의 사진만 보았을 뿐이지 그 집에 가정교사로 출입을 한 지 한 달이 지나도록 그의 얼굴을 직접 본 일이 없다.

 내가 홍 박사의 생활에 거리감을 느낀 것은 사실이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들을 탓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아직도 극빈자가 수백만명 있는 우리나라 현실에서 혼자의 사치는 억제할 필요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것은 사회적 분위기를 위해서도 필요했다. 그래서 내가 만약 김 회장 위치에 간다면, 아니 그보다는 못할지라도 결코 이들처럼 생활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에스컬레이터를 설치할 돈이나 수영장 경비는 사회에 반환할 것이다.

 나의 콤플렉스였는지는 몰라도 홍 박사 집안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나의 학창 시절, 공사판에서 술을 마시고 돌아온 아버지의 주사로 부엌으로 쫓겨나 밤을 꼬박 새운 뒤 아침이 되어 어머니가 해준 밥을 부엌에서 서서 먹고 학교에 가던 그 숱한 나날을 돌이켜 보았다. 그것은 홍 박사의 자녀들에 비해서는 불행이었는지는 몰라도 결코 이들을 부러워하거나 그렇다고 질투하는 마음도 없었다.

 그 집에 가정교사로 다닌 지 한 달이 넘어서던 어느 일요일 나는 홍 박사의 제의로 남편이 경영하는 대구의 공장을 견학하기로 했다. 그것은 대구에 살고 있는 용희의 팔순 할아버지 생일이어서 모든 가족이 대구로 내려가게 되었는데 나도 동행하기로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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