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이 났을 때는 어떻게든 빨리 꺼야 한다. 불을 끄기 위해서는 무리한 방법이 강구될 수도 있고 더 큰 피해를 줄이기 위해 어느 정도의 희생이 요구될 수도 있다. 지난해 환란과 함께 IMF라는 큰불이 났고, 이제 고통의 한 해가 지나간다. 이제는 어느 정도 진화의 조짐이 보이기도 한다. IMF 불을 끄기 위해 구조조정이나 퇴출 등 여러 가지 모양으로 개혁이 추진되어 왔다.
그러나 기존의 것이 모순성을 갖고 있고 당장 부작용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퇴출대상이 되어서는 안된다. 기존의 것은 그 자체가 나름대로 존재 이유가 있고 오랜 문화의 소산이기 때문이다. 재벌의 구조조정이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한 방편일 수는 있지만 대재벌이 있었기에 우리나라에도 중화학공업이나 자동차·반도체 산업이 잉태될 수 있었다는 긍정적인 면이 간과되어서는 안될 것이고 또한 앞으로도 대자본의 역할이 필요한 곳이 있을 것이다.
빅딜의 명분을 위한 빅딜은 피해야 한다. 우리나라 수출의 30% 이상이 전자산업의 몫이고 그밖의 것도 공산품이 대부분이다. 또한 전자산업의 몫은 앞으로 더욱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 비중있는 산업의 역군을 양성하는 곳이 대학의 전자공학 관련학과들이다. 특정 분야의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야 별도로 계획을 세우면 된다고 말할 수 있지만 작금의 교육개혁 추진 과정에서는 이런 특정분야의 인재 양성이 더욱 힘들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전반적으로 대학교육이 부실하였고 대학입시를 위한 과외수업의 폐해가 크다고 해도 그를 피하기 위한 개혁이 공학교육 본류를 훼손하지 않는가 검토해야 한다. 한때는 과학입국이니 기술입국이니 하는 말이 유행하였고 특성화 등을 통해 공학교육을 집중육성하기도 했다. 공학자나 기술자는 전문인이다. 근본적으로 IMF 불길을 잡기 위해서는 모든 분야에서 거품을 걷고 수출을 증대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 공학과 기술의 전문인이 필요하다.
교육은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 하였다. 교육개혁을 한다고 하루 아침에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교사 정년을 낮추는 것은 나이 많은 교사의 무사안일 등으로 인해 여론도 지지하는 것 같지만 교사 당사자의 여론은 아니고, 60세 이상 교원들의 부정적인 모습은 우리 문화의 산물일 뿐이며 그들의 책임이 아니다. 즉 출세지향적인 우리 의식은 나이들면 기관의 장이 되어야 하고, 따라서 정년이 가까워지면 교사들도 교장이 되기를 바라는데 그렇게 되지 못할 경우 타성에 빠질 수밖에 없다. 결국 정년을 5년쯤 낮춘다면 이런 타성에 젖는 나이를 다시 5년 낮추는 효과만 가져올 것이다. 교사의 정년을 낮추는 조정보다는 나이 들어도 교사로서의 보람을 느끼고 긍지를 가질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강구하는 게 순서일 것이다. 교사가 존경받는 문화라면 산업계에도 그런 문화가 확산될 것이라 기대하면 잘못일까. 그래서 공학 기술인도 긍지를 갖는….
창의교육과 창업 마인드 확산 그리고 폭넓은 교육 등을 위해 대학에서는 학부제와 최소전공학점제가 도입되고 있는데 대학교육 일반론으로는 수긍할 점도 있으나 깊이있는 전문인을 길러야 한다는 공학교육 면에서는 부정적이다. 세계경쟁을 해야 하는 공학자 및 기술자를 양성해야 하는 공학교육에서는 창의교육과 창업 마인드 확산이 물론 중요하지만 전문인으로서의 깊이와 소양이 완성되었을 때 그 의미가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대학 이전의 교육과정에서 물리나 화학 등 점수 얻기에 힘든 분야를 기피했던 학생들이 공과대학에 진학하고 전문기술인으로 반드시 배워야 될 과목은 학점 얻기에 불리해 피하는 요령주의 속에서는 이름뿐인 대학졸업자가 나올 수밖에 없다. 순차적으로 학점을 이수하지 않고 타계열 공학계 과목을 이수한다는 것은 불가능하여 공학 자체에의 폭넓은 교육은 어불성설이다.
창의력과 창업 마인드만 갖고 전문인으로서 제 실력을 쌓지 못한 사람이 공학계를 주도하면 세계경쟁에 뒤질 수밖에 없다. 이제라도 교육개혁을 위한 개혁이 아닌 세계 기술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전문공학 기술자 양성을 위한 공학 교육에의 새 방법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대학에서의 개혁에 앞서 중·고등 또는 초등학교에서 창의력이 배양되고 교사도 긍지를 갖는 교육풍토 조성이 먼저다.
<김수중 대한전자공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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