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가 안되나?』
이길주 차장이 양창성에게 물었다.
『오해 현상이 일어납니다.』
오해 현상이란 기술실 내부에서 쓰는 속어로 「강」을 쳤는데 「상」이 뜨는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그것은 초기 단말기 자판에서 흔히 일어나고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것을 프린트하면 제대로 「강」자가 인쇄되어 나온다. 이 혼돈을 놓고 기술실에서는 골머리를 앓았다.
한글 자모 인식에 혼돈이 오는 것에 그치지 않고 더러는 숫자에 혼돈이 왔다. 글자의 혼돈은 직접 보아서 오류가 밝혀지지만 숫자의 혼돈은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었다. 그것은 은행 등에서 사용하는 화폐 단위가 달라지고, 주민전산화를 할 때 주민등록번호가 달라지는 오류가 발생하는 것이었다.
어쨌든 먼저 선수를 치려고 했던 양창성의 2벌식 한글 단말기 연구는 실패로 끝났다. 잘 안된다고 실험용 단말기를 후려치는 기술자의 손에서 그것이 성공할 리가 없다. 그러나 경쟁사(금성사)에서는 그것이 성공하고, 동시에 컴퓨터사업부가 발족되었다. 내가 디스크 오퍼레이팅 시스템, 도스 운용체계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도 바로 그때였다. 그때 막 최초로 마이크로 컴퓨터 국산이 만들어져서 우리에게 화제를 불러일으킬 때였다. 금성전기와 KIST에서 공동으로 개발한 「GS COM80A」는 미국의 인텔사가 75년에 개발한 8피트용 8080 마이크로프로세서의 CPU를 장착했다. 내가 미국 컴퓨터 관계 원서에서 배운 것은 응용프로그램 베이식(BASIC) 언어였다. 「GS COM80A」에서 활용된 응용프로그램 언어 역시 포트란, 코볼이 아닌 베이식이었던 것이다.
양창성이 실험용 단말기를 패대기치는 일로 해서 기술실에서 오고가던 여자의 가치, 즉, 아내란 성적인 대상일 뿐이냐, 아니냐는 논쟁은 쑥 들어가버렸다. 그때 사무실로 전화벨이 울렸고, 내 앞의 전화기에서 울렸다. 누구의 생각인지는 모르지만 다른 직원들의 탁자 위에 있는 전화기에서는 벨이 울리지 않도록 되어 있었다. 기술실로 오는 전화는 모두 내가 받았다. 이 회사에 들어온 지도 반년이 넘었지만 나는 어디까지나 신입사원에 불과했고, 전화를 받는 사소한 일은 내가 맡아서 했다. 지금도 연구실 바닥을 닦는 청소는 내 몫이었다. 연구실은 컴퓨터 기기들이 있어 절대 먼지가 일어나면 안되기에 주기적으로 물을 뿌리고 바닥을 닦아내야 했다.
상대방 수화기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울렸다.
『저…, 저, 다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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