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벤처기업 (62)

 『양창성, 미쳤어? 그게 얼마짜린데 부수고 있나?』

 이길주 차장이 놀라면서 소리쳤다.

 『부수려는 것이 아니고 잘 안돼서 쳤더니 바닥에 떨어진 것입니다.』

 『컴퓨터가 애냐? 때리면 제대로 되나?』

 『버그가 났을 때 치면 제대로 되던데요?』

 『저런 돌팔이가 어떻게 기술실에 들어왔지? 기술실 엔지니어들이 돌대가리란 허 실장의 말이 틀린 것만은 아니야.』

 이길주 차장은 혀를 차면서 양창성을 흘겨보았다. 양창성이 자리에서 일어나 바닥에 떨어진 단말기를 집어서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그가 만지고 있는 CRT 단말기는 라이벌 컴퓨터 회사에서 막 개발하고 있는 「GDT9720」이었다. 그것이 시중에 발표되기 전에 입수해 시험가동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GDT9720」은 한국 최초로 자음과 모음만의 2벌식으로 키보드 자판을 지원하는 한글단말기였다.

 「GDT9720」이 2벌식 한글 CRT 단말기로 최초이기는 했지만, 그보다 앞서 IBM과 컨트롤데이터에서 한글 CRT 단말기를 만들어 시중에 판매했다. 그러나 이 단말기에서 출력되는 한글 정보는 한글 자모 하나에 영문 알파벳 한 자를 대응해서 처리하는 방식이었다. 그래서 「싫」이라든지 「끓」과 같은 복자음 받침이 오는 한글 한 자를 출력하는 데는 영문 알파벳 네 자를 한데 묶어 복잡하게 처리해야 했다. 그로 인해서 처리속도가 느리고, 인자 품위도 형편없이 떨어졌다.

 내가 고등학교에 있을 때 배용정 선배가 실습하던 컴퓨터는 이와 같은 단말기를 사용하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이 회사에 입사하기 직전에 삼성전자에서 새로운 CRT 단말기를 개발했는데, 「ST101」이라는 제품명이 붙은 이 한글 단말기는 휴렛패커드의 미니컴퓨터 「HP3000」에 접속해서 사용하는 한글 모아쓰기였다. 그러나 그 뒤를 이어 코트로닉스사가 한글문자를 롬(ROM)에 내장한 새로운 단말기를 개발했다. 롬 속에는 초성 3벌과 중성 2벌, 종성 1벌이 들어 있어 인자의 품위를 높였다. 그러다가 최근에 모든 단말기의 약점을 보안한 「GDT9720」이 개발되고 있었다. 그 정보가 흘러나오자 재원을 재빨리 입수해서 경쟁사를 앞지르기 위해 기술실에서 연구에 들어갔던 것이다. 그것을 양창성이 맡아서 하고 있었다.

 양창성이 그 일을 맡은 것은 전문학교 재학 때 기술논문 발표회에 한글 단말기에 대한 논문을 발표해서 대통령상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잘되지 않는다고 패대기쳤으니 낭패가 아닐 수 없었다.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