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벤처기업 (59)

 여자가 포장상자를 나에게 내밀자 나는 사양을 하면서 말했다.

 『무슨 선물을 이렇게 줍니까? 내가 받을 이유가 없는데.』

 『이것은 선물이 아니에요. 도시락이니까 드세요.』

 『웬 도시락을….』

 『오늘 아침에 저의 집에서 김밥을 만들었거든요. 제가 친구들에게 준다고 하고 한 개 더 싸달라고 해서 가져왔어요.』

 『도시락도 선물은 선물이죠. 이렇게 신세를 져서 될지 모르겠어요.』

 『그렇게 사무적으로만 말하지 마세요. 꼭 남같이 말하네요.』

 『그럼 우리가 남이지 부부라도 되나?』

 그러나 그 말은 차마 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여자는 커피를 한 잔 마시고 곧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의 시간을 많이 빼앗는 것을 억제하는 눈치였다. 나는 그녀에게 일과 후 만나자고 제의했다. 기쁨조 노릇을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녀가 도시락까지 만들어 갖다 주는 성의를 보아서라도 따로 시간을 가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싸준 도시락은 매우 맛이 있었다. 맛있는 도시락을 먹으면서 나는 점차 그녀의 존재에 함몰되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지만 연애를 할 만큼 내가 한가롭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 잘 알고 있었고, 그럴 만한 감정도 없었다.

 저녁에 여자를 만났다. 여자는 다시 집에 들어갔다 나왔는지 점심 때 입고 있던 바지를 벗고 짧은 치마를 입고 있었다. 그 무렵 여자들에게는 미니스커트가 유행이 되면서 스커트 끝이 무릎 위로 몇 센티 올라가면 벌금을 물린다는 말이 나올 때였고, 남자들은 장발을 단속하던 무렵이었다. 어쨌든 스커트 밖으로 나온 여자의 무릎은 예뻤다. 나는 그녀의 예쁜 무릎을 보는 것만으로도 아까운 시간을 소비하는 것을 보상받는 셈이었다.

 여자는 나를 만나면 컴퓨터에 관심을 보였다. 그날 저녁에도 내내 컴퓨터 이야기를 하였는데, 지내놓고 보면 그녀가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을 것으로 보이는 전문적인 용어를 늘어놓은 기억이다.

 『우리 회사에서 지금 개발하고 있는 것은 64킬로바이트 메모리를 지원할 수 있는 CPU인데 거의 성공하고 있어요. 올 가을쯤에는 상품화할 전망이지요. 물론 64킬로바이트를 지원할 수 있는 8080A가 있지만, 우리는 좀더 획기적인 변화를 모색하지요. 클록속도는 2메가헤르츠가 될 것으로 보고, 주기억용량은 8킬로바이트, 사이클 주기는 5백나노초가 되는 램으로 기억장치를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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