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벤처기업 (57)

 나는 말을 해놓고 후회했다. 애인이 없으면 없었지, 마치 결백을 증언이라도 하듯이 애인이 있어본 일이 없다고 했을까. 그러자 여자는 생끗 미소를 지었다. 그때 여자의 뺨에 조그만 볼우물이 파였다. 그것이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어서 그녀의 빰이라도 만져주고 싶었다. 갑자기 그녀가 좋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나는 스스로 경각심을 가졌다. 여자를 가까이 하지 않으려고 했던 나의 결심을 상기했다. 왜냐하면, 혁명가에게 있어 연애는 금물이듯이 어려운 공부를 하려고 하는 나에게 여자가 생기면 아무래도 그쪽에 시간을 많이 빼앗기고 적은 돈이나마 지출이 될 것이기 때문에 곤란한 일이었다. 그렇지만 인간의 삶이 어떻게 이치로만 살 수 있겠는가. 그러면서도 예쁘고 발랄한 그녀의 모습이 더할 수 없이 아름다워 보였다.

 『저는 음악을 하지만 컴퓨터에 관심이 많아요. 그래서 자주 만나 배우고 싶어요.』

 그 말은 자주 데이트를 하자는 것이었지만 나는 그렇게 알아듣지 못하고 정말 가르쳐 달라는 말로 이해하고 난색을 표했다.

 『그건 어렵습니다. 사실 나도 배우고 있는 중이거든요. 시간이 없어요. 이렇게 시간이 없어보기는 처음입니다.』

 그러자 그녀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녀의 얼굴이 굳어지는 것이 뚜렷했기 때문에 나는 내가 말을 잘못한 것을 알았다. 그러나 어떻게 잘못한 것인가는 알지 못했다. 여자가 자조섞인 어투로 말했다.

 『그렇게 시간이 없는 분에게 제가 시간을 빼앗아서 미안해요.』

 『그렇지 않습니다. 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컴퓨터 기술자세요?』

 『아닙니다. 그렇지만 배우고 있지요. 이번 여름학기부터 전문학교 야간부에 입학해서 컴퓨터를 공부하고 있어요.』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공부하나요?』

 커피가 오자 그녀는 손수건을 꺼내 뜨거운 커피잔을 감싸들고 만지면서 물었다. 커피잔의 따뜻함을 손수건으로 감싸쥐고 느끼는 사람을 처음 보았다. 아주 독특한 취미를 가지고 있는 여자였다.

 『글쎄요. 전문적인 것이어서 이해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관심을 갖는 기술분야는 OS, 즉 오퍼레이팅 시스템(Operating System)인데 OS의 개발에 사용되는 언어는 어셈블리어입니다. 좀 어려운 프로그램언어지요. 흔히 기계어라고도 합니다. 이런 언어를 구사하려면 하드웨어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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