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벤처기업 (56)

 나를 당황시킨 것은 그녀가 나를 찾아올 만한 일이 전혀 없었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나는 처음에 내가 그녀에게 뭘 잘못해서 따지러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엉뚱한 생각까지 들었다. 선배 배용정을 비롯한 기술실 직원들은 나를 재미있다는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면서 기특하다는 표정이었다. 평소에 소심하고 수줍음을 잘 탔던 내가 여자를 사무실로 불러들이는 일은 상상치 못했던 사건이었다. 그런데 그 일을 감히 해냈다는 것이다. 나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이루어진 일이었다.

 약간 창피한 생각조차 들어서 나는 그녀를 데리고 얼른 밖으로 나갔다. 회사 건물 지하로 내려가면 다방이 있었기 때문에 그리로 간 것이다. 외국어 원서 살 돈이 부족해서 그녀에게 커피 사는 것까지 부담이 갔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마주 앉아 바라보자, 흐릿한 불빛에 그녀의 얼굴이 예뻐 보였다. 그녀가 무척 예쁘다는 생각이 들자 커피 사는 일이 즐거웠다. 사람의 마음은 이렇게 간사스럽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스스로 자조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는 갑자기 찾아와서 나를 당황스럽게 한 것이 부담이 가는지 주뼛거리면서 입을 열었다.

 『전화번호도 몰라서 그냥 찾아왔는데 저 때문에 혹시….』

 『천만에요. 다시 만나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나는 사람들이 많은 대중 앞이나 여자 앞에서는 말을 잘 못했다. 그러나 일단 부딪치면 그렇지만은 않았다.

 『저는 음악을 전공해요. 작곡가 지망생이에요.』

 『피아노도 치십니까?』

 『좀 쳐요. 피아노를 치면서 작곡을 연습하니까요.』

 나는 문뜩 저번 하숙집 건넌방에 있던 음대생이 떠올랐다. 밖에 나갔다 들어오면 피아노부터 치던 그 여학생에게 남자가 나타나서 함께 들어오던 그 비오는 날이 연상되었고, 방안에서 들리던 이상한 소리가 기분 나쁘게 연상되었다. 이상한 소리라고 할 것도 없고, 내가 기분 나쁘게 생각할 일도 아니지만. 그런데 바로 앞에 앉은 여학생이 음악을 전공한다고 하니 그 하숙집 음대 학생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무엇을 그렇게 생각하세요.』

 『아가씨와 비슷한 여학생이 떠올라서 생각해 본 것입니다.』

 『전 애인이었나요?』

 『아니오. 애인이라고 있어 본 일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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