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벤처기업 (55)

 그것은 마치 등산을 해서 정상을 점령하듯이 아름답고 패기있는 일이었다. 애드 로버츠와 빌 게이츠의 용기는 나에게 자극을 주었고, 내가 젊은 나이에 창업을 꿈꾸었던 것도 바로 그 두 사람의 전설 같은 이야기가 도움이 되었는지 모른다.

 그날 선배 배용정과 함께 회사 지하식당으로 내려가 점심을 먹고 올라오는데 기술실 양창성이 씩 웃으면서 나에게 말했다.

 『최영준, 요새 재미가 좋은가봐?』

 『무슨 말씀이세요?』

 『뭘, 그렇게 시침을 떼남? 연애중이지?』

 『그런 일은 없습니다.』

 『여자가 사무실로 찾아와서 기다리는데도?』

 나를 찾아올 여자가 없었다. 혹시 있다면 어머니였지만, 어머니가 온 것을 양창성이 연애 운운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무리 짐작을 해보아도 여자라는 인물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는 나를 지나쳐 가면서 덧붙였다.

 『대단히 예쁘던데?』

 『대관절 누구니? 그동안 깔치를 구했다는 거야?』

 배용정이 재미있다는 눈길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어리둥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궁금한 생각을 하면서 사무실로 들어가자 한쪽 의자에 어색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여자가 보였다. 말단에 있는 나의 책상 바로 옆에 내가 앉는 의자를 끌어당겨 앉아서 초조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를 보더니 긴장된 그녀의 얼굴이 활짝 펴지면서 미소를 짓는 것이 무척 반가워하는 표정이었다. 그때도 나는 그녀가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러면서도 왜 그런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냥 찾아왔어요. 건물 앞을 지나다가 생각이 나서요.』

 그녀는 마치 나를 찾아온 것이 죄라도 되는 것처럼 변명을 했다. 그녀의 목소리를 듣자 그제야 떠올랐다. 며칠 전에 버스 안에서 내가 들고 있는 영어 원서 컴퓨터서적을 들어주던 여학생이었다. 처음에 나를 학생으로 알았다가 컴퓨터회사에 다닌다고 하자, 어느 컴퓨터회사냐고 물었던 기억이 났다. 그 이상의 대화는 없었다. 다만 버스에서 내릴 때 나는 그녀에게 책을 들어주어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였다. 그러자 그녀가 얼굴을 살짝 붉히면서 미소를 짓던 장면이 떠올랐다. 그런데도 그녀에 대한 인상이 모두 지워지고 전혀 몰랐던 것이다. 나의 관심은 영어 단어나 일본어 단어였지 예쁜 여자의 얼굴은 아니었는가 보다. 그랬던 그녀가 갑자기 나의 사무실로 찾아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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