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벤처기업 (50)

 『겨우 읽을 뿐입니다.』

 나는 가급적 겸손해질 필요가 있어서 그렇게 말했다.

 이길주 차장은 나를 힐끗 보더니 책을 돌려주고 나갔다. 사람은 참으로 알 수 없는 것이다. 그 이후 이길주 차장은 나를 무시하지 않는 눈치였다. 그것은 담배를 사오는 심부름까지 시키던 그가 그 일을 억제하는 것으로 보아 알 수 있었다.

 컴퓨터 영어 원서는 그 두께도 두껍고 표지도 화려했다. 마치 사전을 방불케 하는 무게를 지녔다. 그래서 그것을 항상 들고 다니다 보니 버스 안에서 본의 아니게 의자에 앉은 사람에게 대신 들리게 하는 일이 있었다. 그 책이 무거워서 버스에 서서는 읽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때 여자 대학생 한 명이 그 책을 들어주었다. 그녀는 그 책의 표지를 살피다가 갈피를 열고 들여다 보더니 나에게 물었다.

 『컴퓨터를 공부하세요?』

 『예.』

 나는 대답하면서 그녀를 내려다 보았다. 처음 하숙집에서 보았던 그 음대 여학생만큼이나 목이 가늘고 예쁜 여자였다.

 『어느 학교에 다니세요?』

 여학생이 망설이다가 용기를 내어서 다시 물었다.

 『나는 학교에 다니는 것이 아니고 컴퓨터회사에 다닙니다.』

 그녀는 내가 젊어 보여서 학생으로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때 나의 나이는 스무살이었다. 더구나 앳된 나의 얼굴로 보면 그 여학생의 동생이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세요? 참 빨리….』

 그 다음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참 빨리도 학교를 나와서 취직을 했구나 하는 감탄으로 들렸다. 그녀가 생각할 때 그렇게 두껍고 전문적인 원서를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대학을 나오거나 유학을 하고 온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녀를 사귄 후 나중에 물어보니 그렇게 알았다고 하였다.

 그 무렵에 나는 사실 여자에 대해서 신경을 쓰고 싶어도 그럴 겨를이 없었다. 컴퓨터 공부를 해서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는 긴박감이 나의 머리 속에 온통 자리잡고 있어서 다른 일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여자에 대해서는 본능적인 끌림이 있었다.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하여도 예쁜 여학생을 만나면 웬지 즐거울 수밖에 없다. 그런 것을 보면 나는 역시 도사는 아닌 모양이었다.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