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에 비가 내렸다. 같은 방에 있는 학생은 여자들을 만나러 간다고 밖으로 나가고 나는 혼자 외국어 공부를 하고 있었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면서 창문을 때렸다. 비가 내리자 기분이 가라앉으면서 왠지 쓸쓸한 기분이 엄습했다. 그 외로움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모른 척할 뿐이었다.
나는 창가로 가서 밖을 내다보았다. 그곳은 상점이 즐비한 시장 골목 입구였는데, 하숙방은 그 건물의 2층에 있었고, 아래는 점포로 되어 있었다. 쌀가게와 세탁소가 같이 나란히 있었는데, 그때 마침 복도 건넌방에 하숙하고 있던 음대 여학생이 오는 것이 보였다. 그런데 그 여학생에게 우산을 받쳐주고 따라오는 신사복의 청년이 눈에 띄었다.
그 여학생은 같은 하숙집에 기거하다 보니 이제는 지나칠 때 눈인사 정도는 나누는 사이였다. 같은 방에 있는 학생의 말처럼 예쁘기는 하지만 나와는 상관없다고 생각하면서 가급적이면 무관심해지려고 노력할 뿐이었다. 조금 있으니 그 여학생이 복도로 올라서는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그 발자국 소리는 남자의 구둣발과 어울렸다. 본의는 아니었지만 나는 신경을 쓰면서 발자국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두 사람의 발자국 소리는 건넌방 문 앞에서 멈추었고, 두 사람이 방안으로 들어가는 기척이 들렸다.
그리고 곧이어 여학생이 치는 피아노 소리가 났다. 그녀는 밖에서 돌아오면 피아노를 치지 않으면 다른 일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나를 깜짝 놀라게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의 피아노 소리가 깨어지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피아노 소리가 깨어지는 것에 놀랄 일은 없겠지만, 내가 당황한 것은 피아노를 치면서 여자가 몸을 빼면서 투정하는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아이, 안돼요. 오빠, 이러지 마, 가만 있으라니까. 아이, 안돼, 씨이.
여자의 투정은 그것이 싫다는 것이라기보다 좋다는 의미로 느껴질 정도로 애교가 가득했다. 어쩌면 흥분이 되어 가는 교성이기도 했다. 아이, 아파, 살살 만지지 참,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면 피아노를 치고 있는 그녀 등뒤로 가서 끌어안고 젖을 만지는 듯했다. 그 방안의 광경을 상상하자 어떻게나 흥분이 되는지 미칠 지경이었다.
나중에 피아노 소리는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손이 헛짚기 시작하는 것이었고, 키스를 하는지 여자가 숨막혀 하는 소리가 났다. 키스를 하면서도 여자의 두 손은 피아노 건반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것은 어쨌든 피아노 소리가 계속 울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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