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벤처기업 (46)

 외국어를 공부하는 데는 발성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나는 우선 필요에 의해서 읽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독해 능력을 향상시키려는 것은 원서를 읽기 위해서였다. 영어는 기초를 공부해 놓았기 때문에 단어와 숙어를 많이 숙지하는 데 맞추었고, 일본어는 기초부터 배웠다.

 나는 잠시도 쉬지 않고 영어와 일본어 단어 암기에 몰두했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단어 암기에 전력했다. 식사할 때도 외웠고, 화장실에 가서 세면을 할 때도 그리고 소변이나 대변을 볼 때도 몇 단어를 암기했다. 이상한 것은 대변을 보면서 단어를 암기하면 거의 잊어버리지 않았다. 그것은 신진대사와 연관이 있는지 모를 일이었다. 사람과 이야기를 하면서도 단어를 암기하는데, 상대방의 특징과 그 단어의 의미를 결합시키면 거의 잊혀지지 않았다. 내 나름대로의 암기법조차 터득하고 있었던 것이다. 잠자리에 들 때는 그날 외웠던 단어를 모두 상기해서 되풀이하여 복습을 하였는데, 단 하나라도 외우지 못하면 자지 않고 암기했다. 그날 배운 것은 모두 암기해야만 잠을 잘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지는 것이다.

 단어 암기에 열중할 때는 잘 몰랐으나 그것이 축적되자 무엇인가 트이는 기분이 들었다. 특히 일본어 단어는 한자권에 들어 있어선지 일단 한문의 의미와 비슷한 맥락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공부하는 영어 사전은 너덜너덜하게 헤어져서 글씨가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같은 방에 하숙하고 있는 학생은 그것을 보며 질린다는 표정을 지었다.

 『형씨, 대단한 독종이외다. 어떻게 이렇게 사시오?』

 나는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럼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여자도 만나고 술도 마시고 하는 것이 청춘 아니오? 그런데 당신은 항상 방구석에 박혀서 영어 단어와 일본어 단어만 외우고 있는데.』

 『글쎄요. 나 같이 방구석에 박혀서 영어 단어와 일본어 단어만 외우는 것도 인생이 아닌가요?』

 『그렇다면 할 말이 없소. 내일은 일요일인데 나하고 나갑시다. 여학생도 소개시켜 주리다. 끝내주는 아이를 소개시켜 주지. 죽여줄 거요.』

 『미안합니다. 나중에 기회를 주시오.』

 『나중에? 언제? 환갑 잔치 때?』

 그는 나를 비웃고 있었다. 마치 청춘을 헛되이 보내고 있다는 식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전혀 현혹되지 않았고, 오로지 어학 공부에만 미련이 있을 뿐이었다.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