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인사를 하고 사장실을 나왔다. 문밖에서 불안스럽게 기다리고 있던 선배 배용정이 나의 표정을 살폈다. 별다른 일이야 없겠지만 혹시 잘못된 일은 없을까 하는 표정이었다. 여비서 김양희는 다리를 꼬고 앉아서 어딘가로 전화를 하면서 웃고 있었다. 그러다가 사장실 문이 열리자 사장이 나오는 줄 알고 움찔 놀라는데, 놀라는 그 동작이 강해서 어쩐지 어색한 느낌을 주었다.
『잘 되었어?』
『예, 잘 해보래요.』
『그 말뿐이야? 다른 질문은 없었어? 』
『별로, 그런데 허성규 실장이나 최영만 사장이 똑같이 물은 말이 있어.』
『그게 뭔데?』
우리는 승강기를 타기 위해 복도 끝으로 걸어갔다.
『자네가 컴퓨터 천재인가?라고 말이야. 형이 무슨 말을 했기에 전부 그런 질문을 하지?』
배용정은 말없이 웃었다. 그리고 그는 신념에 찬 어조로 말했다.
『너는 분명히 잘 할거야. 너는 타고났어. 』
『그렇지 않아. 형이 나를 잘 봐준 것에 불과해. 나는 컴퓨터 기초도 모르잖아.』
우리는 승강기 안으로 들어갔다. 내가 올라가는 버튼을 눌렀다.
『우리 기술실은 아래층에 있어.』
배용정이 고쳐 누르려고 하자 나는 그의 손을 막았다.
『가슴이 답답하니 옥상에 잠깐 올라갔다 내려가요.』
배용정은 팔짱을 끼면서 나를 힐끗 쳐다보았다.
『지금 컴퓨터 기술자는 많지 않아. 우리 방에도 대학에서 실제 배운 사람은 나하고 양창성뿐이야. 실장은 미국에서 학위를 따기 위해 배웠다지만, 이길주 차장은 기계공학 출신이야. 서울대를 나온 김문식, 전태호, 강문식도 마찬가지야. 모두 기계과 출신이야. 서울대는 이제 전자계산학과를 세웠으니까. 모두 초보자들이지. 그러니 너도 배워라. 야간부지만 대학에도 들어가서 공부도 하고 말이야.』
우리는 제일 위층의 승강장에서 내렸다. 층계를 올라 옥상으로 올라갔다. 저편으로 신촌 거리가 보이고, 그 너머로 대학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사월 초순이지만 아침 나절의 기온은 차가웠다. 햇볕이 눈부시게 비쳤으나 암담한 생각 때문인지 어두운 느낌만 들었다.
오피니언 많이 본 뉴스
-
1
[ET단상]데이터 시대의 전략적 선택, 엣지 AI
-
2
[ET시론] 2025년을 준비하는 로봇 산업
-
3
[ET대학포럼] 〈202〉저성장 한국 제조업, 홍익인간에서 길을 찾다
-
4
[ET톡] 경계해야 할 중국 반도체 장비 자립
-
5
[사설]국회 '반도체 특별법' 논의 속도 내야
-
6
[최은수의 AI와 뉴비즈] 〈11〉CES 2025가 보여 줄 'AI 비즈니스 혁신' 3가지
-
7
[김장현의 테크와 사람] 〈65〉일자리 문제는 시간 싸움
-
8
[GEF 스타트업 이야기] 〈54〉한 없이 절망 했고, 한 없이 기뻤다
-
9
[인사] 신한카드
-
10
[사설] 트럼프 2기 산업 대비책 힘 모아야
브랜드 뉴스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