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기 때문인지 견딜 수 없었던 나는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야, 이 새끼야. 잘난 체하지 말고 돌아와.』
선배의 호통에도 나는 그대로 나와버렸다. 자꾸 눈물이 나오려고 했는데 그 이유는 지금도 알 수 없는 감정이었다. 그리고 나는 혼자 하숙집으로 돌아갔다. 돌아가면서 혼자 남겨놓은 그 선배에게 미안하기는 했지만, 그곳을 잘 벗어났다는 사실이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내가 나이가 어려서 놀란 탓이기도 하지만, 그렇게 분노할 일은 아니었는지 모른다. 어차피 그런 곳에 갈 때부터 잘못되었던 것이다. 일단 들어갔으면 그런 일이 벌어질 것은 각오했어야 했다.
다음날 아침에 회사로 나가자 선배 배용정이 나를 보더니 씩 웃었다. 혼자 달아났다고 화를 낼 것으로 생각해서 어떤 변명을 해야 될지 걱정을 했는데, 그는 미소를 지으면서 넘어갔다. 그 일에 대해서는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그는 나를 동료직원들에게 소개했다.
『저번에 말하던 후배입니다.』
의자에 앉아 있던 직원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나에게 악수를 청했다.
나는 먼저 그들에게 고개를 숙여 보이고 내 이름을 말했다.
『최영준이라고 합니다.』
『우리 방에 들어와서 같이 일하게 되어 반갑소.』
차장 이길주라는 사람이 말했다. 그는 서른다섯살 전후로 보이는 사람인데, 후에 알았지만 노총각이었다. 여자들을 싫어해서 호모라는 소문이 있지만 확인된 일은 아니었다. 그 회사에서는 일본에서 수입해온 컴퓨터 부품을 조립해서 팔기도 하지만, 미래의 국산 컴퓨터 개발을 촉진한다는 명분으로 소프트웨어 응용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었다.
그 개발의 핵심이 바로 내가 들어간 기술실이었다. 그 방에는 미국에서 전자공학 박사과정을 마치고 돌아왔다는 실장과 방금 인사한 차장이 있었고, 그 아래로 선배 배용정을 비롯해서 전문대학이나 공과대학에서 컴퓨터를 전공한 다섯 명의 기술자들이 있었다.
『김문식이오.』
몸집이 뚱뚱한 사내가 자기를 소개했다. 그는 신혼시절을 보냈는데 일찍 귀가하였고, 숙직하는 것도 싫어해서 내가 대신 서주곤 하였다.
『난 전태호라고 합니다.』
김문식과 같은 또래의 스물일곱살 기술자로서 아직 미혼이지만 연애중이었다. 그는 보통 키에 알맞은 체격이었지만, 사귀고 있는 여자가 살이 찐 남자를 싫어한다고 점심을 먹지 않고 체중을 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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