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벤처기업 (24)

 그러나 무질서한 세계는 반드시 공사판만은 아니었다. 세계는 그 어느 곳이든, 그 집단을 형성한 사람들이 무식하든 아니면 교육을 받아 지성을 자랑한다고 하든 마찬가지였다. 다만 그 모양새가 좀 다를 뿐이지 퇴폐한 것과 부조리는 마찬가지라는 것을 나는 서울로 올라가 컴퓨터회사를 다니면서 알게 되었다. 오히려 공사판에서의 무질서는 순박하고 단순하였지 교활하지는 않았다. 교활한 무질서가 지적인 집단에서 난무하는 것을 나는 배우기 시작했다.

 나는 처음으로 신사복을 입고 서울 신촌에 있는 애플코리아 컴퓨터회사에 출근을 했다. 그 전에 선배 배용정을 만나 면접을 볼 때 어떻게 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일종의 오리엔테이션을 받는 것인데, 이미 취업이 결정된 상황이기는 하지만 너무 바보짓을 하면 곤란하다고 충고해 주었다. 면접할 때 예의라든지 요령을 들려주었는데, 그 일에서 강조하는 것은 회사에 대한 동경심을 보여주라는 것이었다.

 『형, 내가 동경하는 것은 은행이야. 은행에 취직을 하려고 했어.』

 『그건 알아, 자식아. 그렇지만, 상고 나온 놈이라고 해서 모두 은행에 취직이 되는 것은 아니야. 너 주판도 잘 못 놓는다면서?』

 『그래요. 산수라면 이가 갈려. 그것 때문에 떨어졌어.』

 『계산도 잘 못하는 놈이 은행에 가서 어떡하겠다는 거야? 고객에게 돈을 더 많이 내주어서 은행 망하게 할래?』

 『설마. 그럴려고.』

 『너, 지금도 은행에 미련이 있니?』

 『솔직하게 말해서 그래요.』

 『너, 사장과 실장 앞에서 그런 말 하지 마라. 솔직한 것은 좋지만 때와 장소에 따라 요령이 있어야 해. 내가 알고 있는 너는 너무 고지식해서 그렇게 말할까봐 걱정이다. 애플코리아 컴퓨터회사를 들어보았느냐, 또는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할 것이다. 그러면 너는 감격스런 표정으로, 너 가끔 북한 테레비에 나오는 사람들 표정 보았지? 김일성을 말할 때 사람들이 감격해서 죽을 듯하는 표정 말이야. 그런 표정을 지으면서 애플코리아는 오래 전부터 동경하고 있었던 컴퓨터회사라고 말해. 아니구나. 오래 전이었다면 안되겠네.』

 『왜?』

 『이 회사가 생긴 것이 한 해밖에 안되었거든.』

 그와 나는 허탈하게 웃었지만, 어쨌든 나는 취업이 되었다는 사실이 기뻤고, 그 선배도 무척 즐거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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