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 과학기술과 전문성

 「파킨슨병」이라는 것이 있다. 이 병은 뇌질환의 일종으로 중추신경계에 이상이 발생하고 무기력 증상이 나타나는 병이라고 한다. 모 경영학 교수에 의하면 경영관리에도 파킨슨 증상이라는 것이 있다고 한다. 기술전문가가 없는 회사의 중역회의를 빗대서 들려준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회의에서 기술이사가 수십억원의 생산설비 구입에 대한 보고를 했다. 몇 가지 간단한 질문이 있고 나서 이 안건은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그러나 바로 이어서 보고된 천여만원 상당의 회사 화장실 변기를 새로 구입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모든 이사들이 일가견을 펴며 한 시간 이상 열띤 논쟁을 벌였다.』

 이 이야기는 일반론자는 많아도 전문가가 적은 우리의 현실을 풍자한 것이라고 본다. 요즈음의 국가경쟁력 강화나 IMF 위기대책 등에 대해서는 원론적인 이야기는 많지만 각론에 들어가면 신통한 대책들이 별로 없는 것도 전문성 부재 때문으로 생각한다.

 전문성이란 무엇인가. 과학기술의 전문성과 관련해서는 크게 두 가지 유형이 있다. 일반적으로 교수는 학문지향적 전문성을 가지고 있고, 산업현장의 기술자는 제품지향적 전문성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전문성은 나라에 따라서도 차이가 있어서 획일적으로 구분하기가 어렵다.

 사회의 분위기가 혁신을 장려하고 변화를 포용하는 미국에서는 과학기술자가 학문의 원리나 학문분야를 전공수단으로 삼아서 다방면으로 응용하는 경향이 있다. 예컨대 기계공학의 한 분야인 동역학을 전공하는 미국의 한 교수는 이것을 공작기계의 정밀도 개선과 가전제품의 소음감소에 응용하고 자동차의 승차감 향상에도 응용하며 심지어는 스포츠용품과 음향악기의 설계에도 관여하면서 이 학문분야의 다양한 이론을 발굴해 가고 있다.

 반면에 장인정신을 중시하는 독일과 가업의 전승을 특징으로 하는 일본에서는 과학기술자가 제품지향적인 전문성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의 도쿄대학 생산기술연구소의 이시하라 명예교수는 자동차 변속기에 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학교에 재직하는 동안 일평생을 자동차 자동변속기의 연구에 바쳤다. 그의 연구실 문하생들도 이 연구만을 했다. 이 교수의 전문학문 분야는 유압공학이었으나 변속기의 요소설계·전자제어·유체역학 등 여러 학문분야를 자동변속기에 응용해서 자동변속기의 세계적인 권위자가 됐고 오늘날 일본이 자동차 기술의 일등국이 되는 데 지대한 역할을 했다.

 독일의 베를린 공과대학에는 스푸어 교수가 초대 소장이었던 생산기술연구소가 있다. 이 연구소는 전임연구원이 5백여명이나 되고 첨단연구설비가 갖춰져 있어서 회사의 연구원들이 상당수 파견돼 상주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공작기계 설계와 가공기술 연구에만 전념하고 있다.

 이에 비해서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은 우리나라의 연구소들은 한 연구소에서 첨단 전자기기·섬유기계·화학장치·철도차량·용접·주물 등에 대해서 분산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우리의 대학연구소 실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미국의 퍼듀대학교 기계공학과에는 헤릭연구센터라는 부설기관이 하나 있다. 이 연구소는 냉장고와 에어컨디셔너에 사용되는 가전용 압축기만을 연구하는 전문연구센터로 세계 각국의 가전제품 회사와 컨소시엄을 구성해 2년에 한번씩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하고 있는 세계굴지의 연구소다. 이 연구센터에는 여러 분야의 교수 10여명이 소속돼 압축기만을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있어서 일본의 회사들도 기술자들을 이 연구센터에 파견하고 있을 정도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는 이러한 전문연구소들이 몇이나 되고 이시하라 같은 교수와 연구원이 몇 명이나 될까. 또한 우리나라에는 왜 복사기 연구 전문교수, 세탁기 연구 전문교수가 적고 대학부설 신발연구소·완구연구소·배터리연구소 등은 없는 것일까.

 앞으로 거창한 이름의 큰 첨단연구소보다는 작지만 실속이 있는 소형 전기모터연구소·자전거연구소·전기밥솥연구소 등이 많이 나와야 우리 과학기술도 제자리를 찾게 된다고 주장하면 지나친 억설이 될까.

〈서울대 공과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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