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이것 좀 보세요.』
김지호 실장은 진기홍 옹을 불렀다. 그리고 조금밖에 드러나 있지 않은 벽지를 위쪽으로 들쳐 올렸다. 풀썩, 매캐한 먼지가 좁은 공간에 가득 찼다.
『선생님, 여기 보세요. 벽지 안쪽에 글자가 씌어 있어요.』
그랬다. 김지호 실장이 들춘 벽지의 맨 안쪽 초벌로 사용한 벽지에는 붓으로 쓴 글자들이 빼곡하게 씌어 있었다. 잠깐 동안 바라보던 진기홍 옹은 벽지를 더 들춰 올렸다. 그리고는 짧은 신음소리를 냈다.
『아.』
진기홍 옹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눈을 감았다.
벽지를 잡은 손이 부르르 떨렸다.
『선생님, 그럼 선생님이 찾던 책을 초벌벽지로 활용한 것이었네요.』
집주인이 말을 했지만 진기홍 옹은 그대로 있었다.
아무 말도 없이, 눈을 감은 채로 그대로 있었다. 그 동안 이 책을 찾기 위해 애썼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것이었다. 그 많은 규장각 도서를 다 뒤졌고, 정보통신박물관의 자료도 다 뒤졌다. 통신관련 고서가 있는 곳은 어디든 다 찾아다녔다. 역사를 온라인화시키는 작업이었기 때문에 진기홍 옹은 정열을 가지고 찾아다닐 수 있었던 것이다.
『선생님, 이것 다 뜯어내겠습니다.』
한동안의 시간이 흐르고, 나머지 두개의 방 벽지에도 그 책이 뜯겨져 초벌로 사용되었다는 것을 확인하고 김지호 실장이 말했다.
『그럽시다. 다 뜯어서 아까 올라올 때 보았던 찻집으로 옮깁시다. 그 찻집 아래 작은 연못이 있어요. 그 연못에다 담가 놓으면 책의 내용과 일반벽지를 분리시킬 수 있을 겁니다.』
벽지를 다 뜯어내는 데 시간은 많이 걸리지 않았다.
다만 부피가 꽤 되어 한 번에 다 실을 수 없어 한 차례 더 옮겨야 했다. 출입구에 학교종이 걸려 있는 찻집.
찻집 주인도 이미 진기홍 옹을 알고 있는 듯 함께 도왔다. 찻집 안에는 밖에서 보기와는 다르게 많은 골동품들이 있었다.
연못에 뜯은 벽지를 차곡차곡 담갔다. 진기홍 옹은 물에 담그면서도 연신 내용을 훑어보고 있었다. 어린아이처럼 풍덩거리며 차츰차츰 드러나는 역사의 기록들을 확인하고 있었다.
『선생님, 다행입니다. 인권을 찾을 수 있어서요.』
『김 실장 아니었으면 영영 찾지 못했을 거요. 이제 우리나라의 통신역사의 축이 완성될 수 있을 것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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