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맨홀 (453)

집 주인은 선원사 뒤쪽 발굴작업 현장에 있었다. 조부가 조선말기 궁궐내의 통신담당 기사로 근무했었다는 집주인은 일과가 끝나 집으로 돌아온 뒤 서둘러 폐가 천장에서 나왔다는 책들을 꺼내 놓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책을 받아든 진기홍 옹은 잠깐만에 아니라는 표정을 지었다.

『이것은 성경을 붓으로 써놓은 것이에요. 아마도 신앙적인 문제 때문에 천장에 숨겨 놓은 모양이오.』

그렇게 말하는 진기홍 옹의 표정에 실망의 빛이 역력했다. 요람일기의 인권은 아닐지라도 당시의 통신에 관련된 내용이 있기를 바랐던 진기홍 옹이었지만, 전혀 별개의 책이 발견된 것에 안타까워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선생님, 이 책이 발견된 집에 한번 가보지요. 다른 책이 있을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이젠 없을 겁니다. 천장과 지붕 밑까지 다 찾아보았어요. 바로 헐려고 했지만 진 선생님께서 한번 보고 싶다고 해서 그냥 놔두고 있었을 뿐이에요. 어쨌든 한번 가보시지요. 책이 있던 곳을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집 주인은 앞장서 그 폐가로 안내했다. 집의 형태가 겨우 남아 있을 정도로 허물어져 있었다. 초가지붕에 이엉을 대충 벗겨내고 그 위에 슬레이트를 얹은 나지막한 집.

집주인은 천장 속에 만들어 놓은 선반 위에 있었다는 책을 발견하게 된 상황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인권이 없는 상황에서 그 이야기는 무의미했다. 이곳이 아니라면 어쩌면 영영 찾지 못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제 해가 진 서쪽 하늘로 힘 잃은 노을빛이 안타깝게 걸려 있었다.

집 주인에게 한번 들어가 보겠노라고 말한 김지호 실장이 잡초를 헤집고 집안으로 들어섰다. 무너진 돌담 때문에 들어서기가 더 어려웠다. 진기홍 옹과 집주인도 따라 들어섰다. 케케한 냄새와 거미줄, 그리고 서까래까지 드러난 채 지붕 일부분이 무너져 내린 집은 이제 집의 형태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방이 세 개. 잠깐 동안이지만 집주인이 천장에서 책을 발견한 상황을 다시 한 번 이야기했다. 각 방마다 바래고 바랜 벽지들이 얼룩진 채 흉물스럽게 헤어져 있었다.

진기홍 옹은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은 채 묵묵히 집안을 둘러보았다. 이미 여러 차례 방문했던 집. 지난번 요람일기의 천권과 지권을 확보할 때 어느 정도 이 집에 관한 내력을 알고 있었기에 감회와 안타까움이 교차하고 있었다. 창백한 노을이 하루를 접고 있었다.

어.

김지호 실장은 순간적으로 짧은 신음소리를 내었다.

그리고 등골이 오싹해옴을 느꼈다. 벽지. 뜯겨져 있는 벽지. 네 겹 다섯 겹 덧붙인 벽지의 안쪽 종이에 눈에 익은 글자가 몇 자 보였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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