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맨홀 (452)

『한두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거짓말을 할 사람들도 아니고, 그들은 분명히 업무와 관련된 일로 현금이 인출되던 날 그 친구와 여러 차례 전화통화를 했다고 했습니다.』

김지호 실장이 말을 마치고 전방을 주시했을 때 짙은 노을 아래 서 있는 선원사라는 절의 표지판이 보였다.

『선생님, 선원사가 나오는데, 어떻게 할까요?』

『아, 조금 더 지나쳐 가요. 그래야 우리가 찾는 집이 나옵니다.』

선원사. 김지호 실장은 선원사 뒷편으로 진행중인 발굴작업 현장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선생님, 무슨 발굴작업이 있나 보지요?』

『아직 이곳이 선원사 터라는 것이 확인되지 않았어요. 몽고가 침략하자 고려왕조는 이곳 강화도로 천도를 결정하고 팔만대장경을 판각하게 되었는데, 그때 함께 지은 절이 선원사예요. 선원사는 고려 말엽 화재 등으로 역사 속에서 자취를 감추게 되었는데, 지난 번 발굴작업 때 이곳이 신원사 터로 추측된다는 결과가 나왔어요. 하지만 좀더 명확한 자료를 찾기 위해 이제 두번째로 발굴작업이 시도되고 있어요. 아, 다왔습니다. 저쪽으로 차를 세워요.』

김지호 실장은 진기홍 옹의 말대로 차를 세웠다. 깔끔한 양옥 농가. 바로 옆으로는 다 허물어져 가는 슬레이트 지붕의 폐가가 한 채 있었다. 진기홍 옹은 주인을 불러냈지만 아무런 응답이 없자 바로 옆의 허름한 폐가로 들어섰다. 김지호 실장도 차에서 내려 따라 들어섰다. 사람이 살지 않은 지가 매우 오래된 듯 먼지가 켜켜이 쌓였고, 거미줄이 곳곳에 걸쳐 있었다. 부엌의 천장은 무너져 있었고, 터지고 무너진 벽의 흙덩이들이 방바닥으로 아무렇게나 나뒹굴고 있었다. 진기홍 옹은 한동안 그 폐가를 그렇게 바라보고 있었다. 온통 붉은 빛으로 물든 하늘빛이 그 팔순 노인의 얼굴을 붉은 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이 집이요. 이 집에서 요람일기(要覽日記)의 천(天)권과 지(地)권을 찾았소. 이번에 이 집을 헐려고 작업을 하다가 천장에서 몇권의 고서가 더 나왔다고 했어요. 그래서 작업을 중지시키고 한번 와보자고 한 것이오.』

『이번에 발견된 고서에 요람일기의 인(人)권이 있다는 것인가요?』

『일단은 없었어요. 전화로 제목을 확인했을 때 요람일기라는 이름의 책은 없었어요. 더 찾아보아야 해요. 하지만 지난번 요람일기 천권과 지권이 이곳에서 발견된 것이기 때문에 어딘가에는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어요. 천권과 지권에서는 우리나라의 통신시설을 일본이 침략해간 과정이 나타나 있지만 그것을 주도한 사람과 그 사람들이 어떠한 역할을 수행했는지는 알 수 없어요. 인권에 거론한다고 했어요. 인권을 찾으면 우리가 찾는 다나카의 행적도 확인할 수 있을 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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