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맨홀 (448)

강화대교.

다리 양편으로 바닷물이 빠진 뻘이 노을빛에 호마이카 장롱처럼 윤이 나고 있었다.

『이 다리 끝에서 좌회전합시다.』

『좌회전이요?』

『이쪽으로 가면 샛길이 있어요.』

김지호 실장은 진기홍 옹의 말대로 차를 좌회전시켰다. 염하(鹽河). 강화군과 김포군 사이에 있는 경계수역.

2백미터에서 3백미터 사이의 너비로 뭍과 섬을 구분짓는 염하수도를 따라 차를 몰았다.

『여기서 멀지 않아요. 조금만 더 가면 돼요.』

조그만 포구가 나오고, 이어 작은 마을이 나타났다.

여전히 좌측으로 드리워진 염하의 뻘이 노을빛으로 살아있는 듯 빛나고 있었다. 마을을 지나 우회전하자 언덕빼기 위로 하얀 건물의 찻집이 보였다. 출입구에 어렸을 때 시간을 알려주던 학교종이 몇개 매달려 있는 전망좋은 찻집이었다. 언덕빼기를 오르자마자 잠시 비껴있던 노을이 더욱 강한 빛으로 다가들었다.

『조금만 더 갑시다. 그러면 절이 하나 나올 거요. 선원사(禪源寺)라는 절이요. 거기서 조금만 더 가면 우리가 찾는 집이 나오게 될 거요.』

『선원사요?』

『그래요. 고려시대 때인 1232년 몽고군이 쳐들어 오자 고려의 왕 고종은 도읍을 이곳으로 옮겨 「강도」라 칭하고 몽고에 대한 항전을 계속하다가 1270년에 개경으로 환도하였소. 그리고 그때 불심으로 나라를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팔만대장경을 이곳 강화도에서 만들게 되었어요. 지금 해인사에 소장되어 있는 팔만대장경이오. 선원사는 그 팔만대장경을 위해 세워졌다는 절이오. 구국을 위해 세워졌지만 지금은 그 흔적만 찾은 상태이고, 이제서야 절을 복원 중에 있어요. 문헌상에 나타나는 선원사와 지금 우리가 지나치게 될 선원사가 일치하는지는 더 조사가 되어야 하겠지만, 섬 전체가 고려시대 유물로 가득한 곳이 이곳 강화도예요.』

『선생님, 조선시대 정묘호란 때도 왕이 이곳으로 피난을 왔었잖습니까?』

『정묘호란뿐만이 아니라 1636년에 일어난 병자호란 때도 종묘의 신주를 받들고 세자빈과 봉림대군, 인평대군이 이곳으로 피난을 왔었소. 당시 왕이었던 인조는 스스로 백관을 이끌고 남한산성으로 들어가 싸우다 이듬해 이곳 강화성이 함락되자 남한산성을 열어서 청나라와 강화하고 말았지요.』

『선생님, 아무래도 강화도는 당시 일본의 조선침략을 위한 첫번째 계략의 목표가 되지 않았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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