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연방무역위원회(FTC)가 인텔을 제소한 후 양측의 공방이 한층 더 달아오르고 있다. FTC는 제소 혐의를 입증할 수 있는 자료 확보와 새로운 혐의를 추가하기 위한 조사에 분주하고 인텔도 방어 논리 개발 및 제소의 부당성을 설득하기 위한 여론 조성 등에 바쁘다.
지난 8일 FTC가 인텔을 제소한 혐의는 세계 컴퓨터 칩시장에서 85%의 점유율을 장악하고 있는 이 회사가 시장 지배적 입장을 이용해 PC제조업체나 경쟁업체들에 중요한 기술 정보 및 제품을 선별 제공, 이들에 불이익을 주는 방법으로 반독점법을 위반했다는 것.
FTC는 그러나 「공격의 포문」을 열긴 했지만 현 상태에선 승리를 장담할 수 있는 형편이 아니라고 법조계에선 보고 있다.
지금처럼 컴퓨터와 칩 가격이 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반독점법 위반혐의 적용에 필요한 소비자 손해 부분을 입증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
오는 9월이후 법정 심리가 열릴 예정인 이 사건에 대해 한 로펌소속 변호사는 『정부가 처음부터 어려운 입장에 서고 있다』고 말했다.
또다른 변호사는 『독점업체라도 무제한의 자유는 아니더라도 거래처를 결정할 자유는 갖고 있다』며 『특정업체에 지적재산권을 행사했다해서 반독점법 위반이라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주장』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일각에선 이번에 FTC가 제소한 혐의는 논란의 여지가 적은 부분을 우선 제기해 승리를 얻은 후, 보다 광범위한 혐의에 대한 조사를 통해 더 큰 승리를 얻기 위한 전략에서 비롯된 것일 뿐이라는 해석을 하고 있다.
다시말해 FTC가 입증하기 쉬운 혐의를 먼저 부각시킨 것일 뿐 법정 싸움에서의 승리를 위한 인텔에 대한 공격은 계속될 것이라는 얘기다.
실제로 FTC는 인텔에 대한 새로운 혐의를 추가하기 위한 광범위한 조사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동안 혐의 추가를 위해 조사가 진행된 부분중엔 「인텔 인사이드」 마케팅 전략과 관련된 반경쟁적 사업 관행과 칩세트 시장 진출의 공정성 여부에 관한 내용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소식통은 이와관련, 인텔이 그동안 펜티엄 칩에 적용했던 「소켓7」 공개 인터페이스를 펜티엄II에서 「P6」 버스에 기반한 「슬롯1」이란 전용 인터페이스로 변경한 배경에 특히 FTC의 조사가 집중되고 있는 것으로 전했다.
인텔은 최근까지만 해도 변경된 인터페이스를 어느 업체에도 공개하지 않다가 얼마전,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업체에 이를 라이선스했다고 밝혔다.
이처럼 인텔이 새로운 인터페이스에 대해 폐쇄적인 입장을 고수해 온 결과 이 회사의 코어로직 칩세트 시장에서의 점유율은 최근 85%까지 올라간 것으로 조사됐다.
이같은 사실에 대해 FTC는 인텔이 의도적으로 경쟁업체들의 코어로직 개발 기회를 봉쇄함으로써 이들의 시장 경쟁을 방해하는 한편, PC제조업체들을 자사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도록 한 결과라는 의심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FTC는 또 인텔의 이같은 전략은 마이크로프로세서 시장에서의 지배력을 이용한 것으로 그래픽칩 등 관련 시장 진출에도 활용되고 있다고 보고 있는 것으로 관련 소식통은 전했다. 인텔은 그러나 반독점법을 적용하려면 추측과 예상이 아닌 시장경쟁이 방해받고 있다는 사실에 근거해야 하는 데 FTC의 주장은 이를 입증하지 못하고 있다고 반박하고 있다.
인텔은 특히 최근 칩 시장의 경쟁이 매우 치열해 매분기마다 20%정도의 가격 인하 압력을 받고 있는 상황인데 독점이니 반경쟁적이니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주장이다.
실제로 인텔은 어드밴스트 마이크로 디바이시스(AMD), 내셔널 세미컨덕터 등으로부터 점점 거센 도전을 받고 있다. 그동안 인텔칩만을 써오던 패커드벨 NEC가 최근 내셔널 세미컨덕터 제품 채용을 발표한 것 등도 이같은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인텔은 또 이번 FTC의 반독점 제소를 촉발한 계기로 작용했다고 할 수 있는 인터그패프와의 소송에도 적극 대처, 상황을 반전시키려 시도하고 있다.
인터그래프는 지난해 11월 인텔이 자사의 특허 포기를 강요하면서 칩 공급을 하지 않는 등 반독점법 위반 행위를 하고 있다며 알라바마 지방법원에 제소, 지난 4월 인텔에 대해 반경쟁 행위를 중단하라는 법원의 명령을 받아냈다.
인텔은 그러나 이에 대해 지난 10일 자사는 반독점법상의 독점업체가 아니며 경쟁업체를 해치는 행위도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면서 항고, FTC의 반독점 제소에 불을 지핀 이 사건에서 유리한 판정을 얻어내기 위해 애쓰고 있다. 이 사건에 대한 판결이 FTC와의 법적 분쟁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인텔은 지난 5년간 연평균 42%의 순익증가와 34%의 매출 증가율을 보였으며 주가는 이 기간동안 5배가 상승하는 놀라운 성장력을 보여 주었다.
FTC의 제소는 인텔이 앞으로도 이같은 성장을 지속할 수 있을지를 가름할 중요한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오세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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