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램의 거인인 삼성전자가 결국 「인위적 세대 교체」라는 칼을 빼들었다.
삼성전자의 2백56MD램 조기생산은 96년 이후 세계 D램 산업을 끝없는 불황으로 내몰고 있는 해묵은 난제인 「공급과잉」을 「힘」으로 제압해보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따라올 수 있는 업체는 따라오고 능력이 부족한 업체는 자연도태시키겠다는 초강수를 던진 것이다.
최근 D램 시장은 시계 제로인 상태다. 예측 가능한 부분이 거의 없을 정도다. 유수의 시장 예측기관들조차 하루가 멀다하고 수정치를 내놓고 있다.
지난해 한국과 일본업체 공조로 실시했던 「감산 카드」도 후발업체들의 반발로 성사가능성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 말 삼성전자가 꺼내들었던 64MD램 조기 양산 포석도 불과 수개월만에 약효를 잃었다. 대부분 제품의 시장 가격이 15달러 이하로 내린 것이다.
16M에서 64M로 세대교체가 채 이루어지기도 전에 지난해 가격 폭락의 재연을 걱정하게 된 상황에서 선두업체인 삼성으로서는 모종의 결단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이르렀다.
2000년대 초에나 시장이 형성될 것으로 예상됐던 2백56MD램 시대를 앞당기자는 것이다.
삼성 등 극히 일부업체를 제외하고는 64MD램 생산조차 원활치 못한 것이 현재의 상황이라는 점에서 이번 삼성전자의 2백56MD램 생산 소식은 다른 반도체 업체들에게 매우 충격적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처럼 삼성전자가 다소간의 무리를 무릅쓰면서 2백56MD램으로의 세대교체 의사를 밝힌 것은 기본적으로 세계 D램 시장에서 차지하고 있는 우월적 지위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메모리반도체 산업은 자본력에서 승패가 갈렸다. 대규모 자본투자와 공정기술 확보가 매출 순위를 결정하는 요인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제품의 고집적화가 진전되면서 상황은 크게 변화했다. 경쟁력을 구성하는 요인중 기술요인이 자본 요인보다 중요해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삼성전자가 이번 2백56MD램 생산을 발표하면서 「추가 설비투자 없이 기존 64M 생산설비로 2백56MD램 양산에 성공했다」는 부분을 강조한 것은 바로 이 때문으로 보인다.
IMF이후 추가 설비 투자 자금 확보가 어려워지면서 2백56MD램 생산의 선결조건으로 알려진 3백mm 웨이퍼 관련 설비 투자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기존 설비를 활용해 차세대 제품 생산이 가능하다는 「기술력」을 과시함으로써 선두자리를 완전히 굳힐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기존 생산설비를 활용해 시장성있는 2백56MD램을 만들어낼 수 있는 반도체 업체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삼성전자의 이번 2백56MD램 생산은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 적지 않은 파장을 불러올 것이 확실해 보인다.
특히 향후 D램 시장이 지금까지 상호 공존을 전제로 적당히 파이를 나눠먹던 시대에서 제로섬 게임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는 성급한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최승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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