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이브> 최고경영자의 책임

미국 사람들은 어떤 일을 할 때 전체의 5분의 4는 원칙을 세우는 데 힘을 쏟는다고 한다. 반면 우리는 그것에는 별 관심이 없고 일단 실행부터 하고 본다. 그러다 보면 「머리는 없고 손발만 분주한 형국」으로 나아가는 방향을 가늠하기 어렵다.

최근 우리 기업체들이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는 모습이 바로 그렇다. 외환위기에 따라 불가피하게 실시하게 됐다 하더라도 일단 구조조정을 하려면 원칙부터 세워야 하는 게 순서다. 그런데 국내 대표적인 업체들이 세우고 있는 구조조정 계획을 들어보면 국내 산업계의 판도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한치 앞을 내다보기가 어렵다. 정부가 주력기업을 선정하라고 하니까 어떤 회사(그룹)는 무려 7개의 기업체를 하나로 통합하려 하고 있다고 한다. 성격이 다른 회사를 잡탕식으로 섞어서 뭘 어쩌자는 것인지 도무지 깜냥이 서지 않는다.

또 국제화가 능사인 것처럼 엄청난 금액을 들여 선뜻 사들이던 외국 기업체를 이제 그것부터 매각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이젠 충분히 국제화했으니 몇 개쯤 팔아도 된다는 것인지, 아니면 국제화를 안해도 좋다는 것인지, 이것도 저것도 아니면 무엇인지 통 모르겠다.

특히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은 대량해고다. 어떤 대기업은 직원의 3분의 1인 1만명을 해고하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 또 지난해 적지 않은 규모의 흑자를 낸 기업도 무려 수천명에서 1만명이 넘게 임직원을 해고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렇게 잘라내고도 버틸 수 있는 기업이라면 그동안 경영이 방만했다는 것 외에 어떻게 달리 해석해야 할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수많은 임직원들을 길거리로 내몰면서 책임을 지는 경영자가 한명도 없다는 점이다.

이러한 우리네 사정과는 달리 최근 미국 넷스케이프 커뮤니케이션스사의 제임스 박스데일 사장은 97년도 봉급을 단돈 1달러로 하고 상여금은 한 푼도 받지 않겠으며 스톡옵션 30만주도 회사 측에 반납했다고 넷스케이프 측이 최근 공개했다. 미국 제너럴모터스의 영국 현지법인인 복스홀자동차의 닉 라일리 회장도 최근 앞으로 1년간 기본급을 한푼도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들은 모두 경영난에 처한 회사의 최고경영자들로서 스스로 그 책임을 지고 나선 것이다. 우리 기업이 임직원을 대량으로 해고해야 한다면 최고경영자는 그에 걸맞은 책임을 져야 하는 게 도리다. 경영자부터 스스로 책임지고 나선다면 구조조정도 한층 쉽게 풀리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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