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맨홀 (386)

전화를 끝내고 바라본 창밖의 하늘로 가을햇살이 맑게 빛나고 있었다. 유난히 쾌청한 가을날이었다.

현미는 다시 한번 전화기를 바라보았다. 바로 연락이 오게 될 것이다. 형부가 있는 곳이 어디든, 어떠한 형태로든 연락이 가능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언제 어떻게 발생할 지 모르는 통신사고를 위해 늘 비상연락을 대비하고 있는 형부였다. 통제실 직원에게 연락을 부탁했고, 수배가 되면 곧 전화가 걸려오게 될 것이다.

현미는 그날, 불구경 하느라 밖에 한동안 나가 있었던 혜경을 떠올렸다. 하지만 그때는 불이 나고 한참 시간이 흐른 후로, 돈이 타은행으로 송금된 시간과 맞지 않았다. 시간이 맞는다고 해도 그 시간에 다른 곳에 가서 작업을 하고 온다는 것도 있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하늘 높이 치솟던 불길. 금방이라도 세상 전체를 태워버릴 듯이 하늘로 치솟던 그 불길이 은행으로 번질지 모른다는 우려때문에 서류를 정리하자고 혜경을 찾았을 때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그 불길에 매료되어 있었던 혜경이었다.

결혼. 죽음. 돈.

현미는 혜경의 죽음을 처음 목격한 어제, 불이 나던 날 저녁에 만나기로 했던 혜경의 남자친구 승민을 생각했었다. 결혼과 죽음이라는 두개의 본질적 테마가 어우러져 미묘한 감정으로 빠져들게 했다. 더욱이 혜경의 남자친구한테는 오늘까지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은행의 전화가 불통이면 방문이라도 해서 알아보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은행에서도 혜경의 죽음을 알려줄 수 있는 곳이 없었다. 시신은 부검을 위해 병원에 그대로 안치되어 있지만, 이 상황을 어디에도 연락할 수 있는 곳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고향이 강원도 산골이라는 이야기는 들었었다. 인사기록 카드에도 그쪽으로 적혀 있었지만 연락이 가능한 곳은 없었다. 가족도, 친구도 그 누구의 연락처도 확보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 와중에 50억이라는 돈이 불법으로 송금된 사고가 터진 것이었다.

현미는 고개를 들어 밖을 내다보았다. 혹시 형부가 보이나 해서였다. 하지만 사고현장의 모습은 변함이 없었다. 막힘없이 차량의 소통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어제 혜경이 죽은 창연오피스텔 현장에서 만난 경찰서의 형사반장을 떠올렸지만 아직 자신이 이야기할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따르릉.

전화기의 벨이 울렸다.

현미는 빠르게 송수화기를 집어들었다.

형부였다. 김지호 실장.

『아, 처제. 어제 집에는 별일 없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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