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2월 1GD램 공동 개발 계획을 발표하는 등 수년전부터 꾸준히 D램 분야에서 관계를 맺어온 미국 텍사스 인스트루먼츠(TI)와 일본의 히타치제작소, 미쓰비시전기 등 3사의 협력 구조에 변화가 일고 있다.
지난달 9일 미국 텍사스 인스트루먼츠(TI)와 일본 히타치제작소는 D램분야 반도체합작회사인 「트윈스타 세미컨덕터」의 경영에서 히타치가 철수한다는데 합의했다고 발표했다(본지 2월 11일자 국제면 참조). 발표 당시 두 회사는 합작 해소의 배경으로 D램 가격 하락으로 인한 자금 사정 악화와 트윈스타 세미컨덕터의 계속되는 적자 경영를 들었는데 최근 업계 일각에서는 이와는 다른 또다른 이유가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있게 제기되고 있다.
TI는 히타치가 트윈스타 세미컨덕터에서 철수하면 이 공장의 생산라인을 시황의 영향을 덜 받는 비메모리 생산라인으로 전환할 방침이라고 발표했었다.
그러나 업계 관계자들은 TI가 이 공장의 종업원과 제조라인을 그대로 유지하는 등 실질적으로는 D램 사업 축소 움직임을 전혀 보이고 있지 않다고 전한다. 그 뿐 아니라 최근에는 1GD램 분야에서 제휴관계에 있는 미쓰비시전기로부터 64MD램 칩크기 축소 기술을 도입하려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업계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TI와 히타치의 합작관계 청산에 또 다른 이유가 있다는 주장은 바로 이같은 TI의 움직임에 기인한다. 즉, 두 회사의 합작관계 해소는 미쓰비시전기와의 관계를 강화하려는 TI의 전략이 배경에 깔려 있다는 논리인 셈이다.
이같은 논리 아래 히타치제작소, 미쓰비시전기, TI 3사의 움직임을 바라보면 뭔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3사가 지난달 공식 표명한 「1GD램 공동개발라인 건설 1년 연기」 발표로 발표 당시 전문가들은 「반도체 사업의 성역」으로 일컬어지는 연구개발분야에까지 손을 대는 것은 다소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었다. 물론 3사는 『D램 시황 악화로 인해 자금 사정이 나빠진 때문으로 공동 개발의 기본 계약은 그대로 유지된다』며 3사 연합의 존속을 강조했다.
그렇다면 TI는 왜 합작관계를 청산하면서까지 히타치를 멀리하고 미쓰비시와의 관계를 강화하려 하는것일까.
트윈스타 세미컨덕터는 D램 가격이 폭락한 96년부터 본격 가동되기 시작해 지금까지 16M와 64M을 생산해 왔으나 좀처럼 회복세로 돌아서지 않는 D램 시황 때문에 설립 이래 최근까지 적자가 누적돼 왔다. 의도대로 합작사업이라는 특성을 활용해 개발 및 설비투자 부담은 줄였으나 제조단가가 경쟁업체들 제품에 비해 높아 수익을 확보할 수 없는 상황이 계속된 것이다. 트윈스타 세미컨덕터에서 생산되는 제품의 제조단가가 높은 결정적인 이유는 마스크 사용매수가 많기 때문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16MD램 당시 미국 마이크론 테크놀로지사는 가격경쟁력을 배경으로 저가 제품을 대량 생산해 시장을 석권했다. 세계 반도체 무역통계(WSTS) 조사에 따르면 96년 시장 점유율 6%였던 마이크론은 지난해 9%로 상승했는데 특히 지난해 12월 한달동안은 15% 점유율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마이크론의 급속한 성장 비결은 D램 제조에 필요한 마스크의 매수가 15장에 불과하다는 데 있다. 마스크 매수가 적다는 것은 그 만큼 제조 단가의 억제가 손쉽다는 것을 의미한다. 같은 시기 다른 경쟁업체들이 D램 생산에 사용한 마스크 매수는 20-25장. 이 때문에 마이크론의 D램 단가는 경쟁업체들보다 2달러 정도 낮았다. 16MD램 당시 마이크론을 지켜본 세계 D램업계는 경쟁업체를 앞지를 수 있는 가격 절감 기술을 확립하지 않고서는 경쟁에서 살아남기 힘들다는 현실을 인식했다.
히타치와 TI는 지난 88년 16MD램 공동 개발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줄곧 협력관계를 유지해왔다. 두 회사 협력관계는 91년 64MD램, 93년 2백56MD램 공동 개발로 이어졌고 이들이 공동 개발한 기술이 바로 트윈스타 세미컨덕터에 집약되기에 이른 것이다. 합작 관계를 해소하기 직전까지 두 회사는 64MD램 축소칩을 공동 개발해 왔다. 그러나 이 기술은 마스크 사용매수가 약 30장으로 매우 많다. 물론 최신 미세가공기술을 도입해 칩 면적을 줄이면 제조단가를 낮출 수는 있다. 그렇지만 TI는 「단순히 칩 면적을 축소하는 것 만으로는 가격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할 수 없다」는 판단을 했을 뿐 아니라 이를 위해 새로운 설비투자를 강행하는 것도 무리라는 결론을 내렸고, 이 때문에 합작사업을 방치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TI와 히타치는 공식적으로는 64MD램과 256MD램 공동 개발 체제에 변화가 없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D램 개발 부문 파트너로 TI가 히타치보다 미쓰비시전기쪽으로 무게 중심을 두고 있다는 관측이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아직 공식적인 발표는 없었으나 64MD램 축소칩 제조기술을 미쓰비시전기가 TI에 제공하기로 했다는 소문이 가장 대표적인 예로, 이것이 사실이라면 앞으로 3사의 관계는 매우 미묘해질 수밖에 없다.
TI가 미쓰비시전기의 제조기술 도입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마스크 사용매수가 20장 전후로 매우 적기 때문이다. 미쓰비시전기는 이미 약 20장의 마스크로 칩 면적이 80제곱mm인 64MD램 축소칩을 양산하면서 기술을 축적하고 있다. 미쓰비시의 기술을 사용하면 적은 마스크 매수로 1백35제곱mm이었던 제 1세대 칩을 80제곱mm까지 줄일 수 있다. 여기에 미세가공기술을 현재의 0.25미크론에서 0.18미크론으로 변경하면 칩 면적은 50제곱mm까지 낮추는 것이 가능해진다.
마스크 사용 매수가 적다는 것은 공정 수 절감과 직결돼 수율 향상으로 이어진다. 실제로 미쓰비시의 기술을 도입하고 있는 대만의 파워칩 세미컨덕터는 현재 1백%에 가까운 수율로 64MD램을 제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만약 일부 관측처럼 TI가 히타치를 버리고 미쓰비시를 선택하려 하고 있다면 그 이유는 역시 이같은 기술력 때문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물론 아직 TI가 공식적으로 자사의 입장을 명확하게 밝히고 있지 않을 뿐 아니라 히타치와 미쓰비시도 이에 대해 별다른 업급이 없어 또 다른 어떤 변수가 끼어들 가능성도 매우 높은 것이 사실이다. 여하튼 중요한 것은 이제 치열한 경쟁체제로 돌입한 세계 D램업계는 기술력 제고를 위해 서로간에 필요한 기술을 흡수하려는 이합집산이 더욱 확산될 것이 분명하다는 점이다.
<심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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