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맨홀 (364)

김지호 실장은 피우던 담배를 비벼 끄고 멀리 동쪽 하늘을 바라보았다. 아름다웠다. 이 아름다운 강산이 45년 동안이나 일제의 압박속에서 지내야 했던 것이다.

왜 그렇게 되었는가.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당시 두 차례의 전쟁을 치룬 후 나라의 통신권이 완전히 일본에게 넘어갔고 이는 일본이 우리나라를 침탈하는 과정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다. 통신전쟁. 일본은 이미 통신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고, 그것을 운용할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 힘을 가지고 통신전쟁에서 이겼기 때문이며, 통신권을 잃어버린 상태에서 나라의 존립은 이미 무너지고 만 것이었다.

결국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 승리하여 조선의 통신기관을 마음대로 지배하고 사용할 수 있게 된 일본은 1905년 4월에 이르러 마침내 법적으로 우리의 통신권을 강탈하고 만다. 그리고 6개월. 을사보호조약이라는 명분으로 나라의 주권까지도 무너지게 된 것이다.

그 이전 일본은 러일전쟁을 유발한 후 그 군사적 우세를 배경으로 1904년 2월 21일에 「한일의정서(韓日議定書)」를 강요하였다. 한일의정서의 체결은 일본이 우리의 내정과 외교에 간섭하여 우리나라를 보호국화하고, 끝내는 식민지로 병합할 것을 목적으로 한 노골적인 침략정책의 출발이었다. 이등박문(伊藤博文)은 한일의정서를 바탕으로 하여 앞으로의 구체적인 침략 방침과 그 대책을 마련하고자 동년 3월 17일에 내한하였다. 그는 10일동안 체류하며 우리의 실정을 폭넓게 검토하고 특히 당시의 일본공사가 제시한 「대한사견개요(對韓私見槪要)」를 근거로 「대한방침(對韓方針)」 「대한시설강령(對韓施設綱領)」을 수립한 다음 귀국하여 일본 정부에 건의, 동년 5월말에 이를 일본 정부의 시책으로 확정시켰다.

「대한방침」의 서두에서 『일본제국은 한국에 대하여 정치 및 군사상에 있어서 보호의 실권을 거두고 경제상에 있어서는 더욱더 아(我) 이익의 발전을 도모할 것』이라고 하였음은 우리나라를 보호국화하여 경제상의 이권을 추구하고 있었음을 단적으로 나타내는 것이었다.

이 침략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설정한 것이 「대한시설강령」이었고, 그후 이를 더욱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방책으로서 마련된 것이 「대한시설세목(對韓施設細目)」이었다.

『조선의 통신기관을 장악할 것. 통신기관 중 중요한 전신선을 아방(일본)에서 소유하든가 또는 우리의 관리하에 둘 것.』

「대한시설강령」에 거론된 내용의 첫 부분의 내용이었다. 김지호 실장은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통제실 안으로 들어서며 다시 한번 일본의 집요함에 전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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