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맨홀 (352)

1886년 7월 15일. 원세개는 조선의 대신과 각 영사를 자기 공관으로 초청하여 연회를 베풀면서 모인 사람들에게 한 장의 전보문을 제시했다.

「청국 정부는 한, 러 밀약설에 대해 문죄(問罪)하기 위해 금주(金州)의 72영(營)이 오늘 배를 타고 고려(朝鮮) 왕경(王京)을 향해 출발했다.」

당시 복잡하고 혼란스러웠던 조선의 정세로 보아 경악을 금치 못할 대사건이었으나 그것은 원세개가 조작한 가짜 전보였다. 그러나 그 사실을 아는 자는 그 연회장에 아무도 없었다.

원세개가 조선에 처음 나타났던 것은 24세 때인 임오군란(1882)때였다. 그뒤 조선의 친영군이라는 신식 군대를 훈련시켰고 김옥균이 주축이 되어 일으킨 갑신정변 때에는 개화파와 일본군을 물리치고 척족정권을 부활시켜 스스로 그들의 지주임을 자처했다.

이러한 업적이 북양대신 이홍장의 눈에 들어 조선 주재 청국 관헌의 최고 책임자로 임명된 원세개의 그때 나이는 27세. 그는 청국 세력을 등에 업고 조선의 궁내부 대신처럼 행동하며 주택과 마차, 장신도구에 이르기까지 조선 국왕에 못지 않은 호화로운 생활을 하였다. 대궐에 출입할 때도 다른 나라의 외교사절들은 궐문 밖에서 내려 국왕이 있는 전각까지 보행하는 것이 상례였는데도 원세개는 승차한 채 하인배까지 거느리고 제멋대로 출입하는 횡포를 부렸다.

그러한 중에 제2차 한, 러 밀약설이 터진 것이다. 러시아가 조선을 보호해줄 것과 청국의 간섭을 배제하고 타국과 일률평행하도록 지원해 주되 만일에 청국이 이를 수락하지 않는다면 군함을 파견하여 도와줄 것을 요청한다는 서한을 조선 정부에서 주한 러시아공사 웨베르에게 전달한 사건이었다.

이러한 사실을 잘 아는 국왕의 척신을 통해 알게 된 원세개는 제보자의 이름을 팔지 않고 중국으로 연결된 통신선로를 이용, 가짜전보를 만들어 조선 정부와 각국 공사들에게 공갈과 협박을 시도한 것이었다.

원세개의 가짜 전보가 공개되자 그 자리에 참석했던 대신과 영사들은 전율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소식은 곧바로 국왕에게 보고되어 왕실 전체가 놀라 군대에 비상 경비령을 내리는 등 소란을 피웠고 이에 장안의 인심은 매우 흉흉해지기 시작했다.

통제실 안은 여전히 조용했다. 영등포 지점의 시외교환기 경보도 이내 화면에서 사라졌다.

가짜전보.

김지호 실장은 생각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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