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절체시스템이 정지해 있고 모든 회선이 절체된 상황의 고요였지만 김지호 실장은 불안하지 않았다. 초조하지 않았고 차라리 담담했다.
왜일까. 시스템이 다운된 상황의 적막감은 절망 그 자체다. 보통 시스템이 아니다. 우리나라 통신망 전체를 컨트롤하는 핵심 시스템이다. 그 시스템이 다운되어 있는 상황이었지만 김지호 실장은 불안한 생각이 들지 않았다.
왜일까. 무엇 때문일까.
현재의 상황은 모든 것이 최악의 상태. 더이상 나빠질 것이 없다. 이젠 복구과정이 남았을 뿐이다. 모든 통신망은 회선절체를 통해 정상 동작하고 있고, 복구도 신속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화재발생에 대한 언론의 강한 질책이 있었지만, 복구과정은 세계 신기록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신속하고 일사불란하게 진행되고 있다. 자부심을 가져도 괜찮을 정도로 복구작업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는 것이었다.
이러한 느낌은 맨홀 속 복구작업 현장을 확인하면서도 느낄 수 있었다. 신들린 듯 작업에 열중하고 있는 직원들. 손끝에 피가 맺힌 채 케이블 접속작업을 계속하고 있는 직원들. 그들의 눈빛은 빛나고 있었다. 전기통신이 도입된 지 1백여년 동안 이 사고를 대비해두었던 것처럼 일사불란한 복구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하루 이틀 만에 외국장비를 수입해다 차린 통신회사가 아니다. 결국은 뻔한 외국의 통신회사가 아니다. 우리나라의 정보통신역사를 송두리째 쓸어안고 그동안 묵묵히 맡은 바 책임을 다해온 기업이기에 이러한 사고발생시에 신속하게 대처할 수 있는 것이다.
완전히 빠지지 않은 연기와 악취, 각종 그을음 속에서도 혼신의 힘을 다해 복구작업을 벌이고 있는 직원들.
김지호 실장은 그들을 보면서 차라리 상쾌한 느낌을 가졌다. 고장요인은 늘 존재하는 것이고, 그 고장을 대비하여 무한정 예비회선을 준비할 수 없는 것이라면 이러한 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얼마나 신속하게 복구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바로 기술력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계속 고요가 이어졌다.
다시 요람일기로 시선을 돌렸다.
100년. 100년 전의 일들을 눈앞에서 생생하게 벌어지는 일처럼 되새기며 읽어 내려갔다.
통신원(通信院). 현재의 정보통신부.
김지호 실장은 진기홍 옹에게서 요람일기를 쓴 통신원 김철영 체신과장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만일 그당시 김철영 체신과장이 기록하지 않았다면 당시의 역사는 잊혀졌을 것이고 일본의 만행도 묻혀버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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