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 "연구행위"의 다양성

흔히들 학문을 너무 사랑해서인지 「연구」라는 말이 일반화되어 이제는 퇴화되는 현상마저 볼 수 있다. 요즘엔 점쳐주는 곳도 무슨 철학연구소라 하며, 단순히 무슨 일을 조사, 검토하는 것도 「연구」한다고 한다. 연구라는 행위의 권위적 개념 때문인지는 몰라도 연구라는 말이 마땅치 않게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연구」라는 말은 쓰는 이에 따라 그 뜻과 색깔이 다른 것이다.

연구를 업으로 하는 연구자들도 서로 연구라고 할때 그 내용은 각자 다른 것이 사실이다.우선 인문사회계열의 연구와 이공계열의 연구가 다르다. 인문사회계열의 연구는 설문조사 등 사회적 통계를 기반으로 이를 분석하는 것이 연구의 방법론이다. 그러나 이공계열의 연구는 실험을 통하여 자연현상을 재현하거나 모방하여 논리의 근거로 삼는 것이 보통이다. 쉽게 이야기 하면 연구비 구성에 있어 인문사회계열의 연구에서는 많은 사람을 동원한 설문조사비, 자문 및 회의비, 공청회비 등의 비중이 큰 반면 이공계열의 연구에서는 연구기기 및 장치비, 실험재료비의 비중이 크다. 전자는 소프트웨어 비중이, 후자는 하드웨어 비중이 크다고 할 것이다. 물론 이공계 연구에서도 이론수학자는 도서실의 학술서적만 있으면 연구를 할 수 있는 경우도 있으나 이는 극히 예외적이다. 오히려 많은 사람을 철야로 동원해서 시험공장을 가동시켜야 하는 연구가 더 많은 편이다. 그런데 이공계열연구자들 사이에서도 연구라고 할때 그들 뇌리에 떠오르는 색깔은 다르다. 대학교수는 대개 대학원생으로 연구팀을 구성하는 기초연구를, 기업연구소 연구원은 제품이나 공정의 개발연구를 각각 염두에 둔다. 연구비 규모면에서나 시한성면에서 기초연구와 개발연구에 큰 차이가 있음은 물론이다. 또 같은 연구라 하더라도 연구 스펙트럼상에서 그 특성을 달리 하고 있다.

따라서 연구자마다 연구개발의 스펙트럼에서 자기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할 수 있는데가 있으며 이것은 단지 연구자 개인 뿐 아니라 연구팀, 연구집단,그리고 연구소에도 적용된다. 이론물리연구와 핵 융합연구, 표준연구와 통신시스템연구는 그 구성이나 운영을 달리할 수 밖에 없다. 물론 연구소 설립시 정관에 연구소의 목적이 명시되지만 대체적으로 기초연구소, 선도기술연구소, 산업응용기술연구소, 공공기술연구소 등으로 구분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공계열 연구에는 공통점이 있다. 하드웨어의 비중이 크므로 연구소를 쉽게 이리저리 옮길 수 없으며, 또 실험결과가 나와야만 다음 연구로 넘어갈 수 있기 때문에 연구기간이 대개 장기적이다. 대개는 3년의 바이오리듬을 갖고 새로 시작되고 또 중간평가가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이 리듬을 깨뜨리면 연구의 효율성이 급격히 저하되고 또 좋은 결과를 얻기 힘들다.

IMF 한파가 몰아치기 전에도 출연연구기관 및 국공립연구기관의 관리체계 개선을 통한 생산성 향상은 국가적 과제로 되어 왔다. 요즈음 다시 논의되고 있는 것은 21세기로 넘어서는 문턱에서 국가경쟁력을 회복하는데 과학기술계가 앞장서야 한다는 데서 비롯된 것으로 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되는 사실이 하나 있다. 연구원은 오직 연구결과 하나에 보람을 찾는 직업인이다. 그리고 연구의 효율성은 연구자가 자기의 연구에 미칠 때 최고조에 달한다. 연구는 자율을 통한 창의성이 발휘될 때에야만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노벨상은 찾아오는 것이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연구단위를 무너뜨리거나 연구의 리듬을 깨뜨리면서 연구기관의 기능을 개편하려는 것은 오히려 득이 되지 못한다. 하드웨어 연구기관의 바이오리듬이 3년이라면, 최소한 3년이라는 기간을 갖고 연구단위들의 연구방향을 국가목표에 맞는 쪽으로 연구비의 중점 지원을 통해 조정하면 자연히 연구소는 변하기 마련이다.

흔히들 연구행위의 다양성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남의 연구행태를 비판하거나 일괄적으로매도하는데 이것은 아주 위험한 일이다. 한개의 잣대나 기준으로 연구관리 체계를 정비하려는 것은 빈대를 잡기 위해 초가삼간을 태우는 격이 된다. 다양성의 존중과 조화가 민주사회의 골격이라면 연구행위의 다양성이 시너지효과를 발휘하여, 과학기술이 경제를 선도하도록 새정부의 국가경영이 전개되어야 할 것이다.

<朴元勳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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