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맨홀 (331)

『그 불과 빛을 상징하는 파라바하의 모양은 독수리였소. 독수리. 날개를 펼친 독수리의 형태였소.』

여인은 사내의 이야기를 듣고만 있었다. 어쩔 도리가 없었다.

사내가 침대 안쪽으로 다가들어 벽쪽으로 머리를 기대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여전히 사내의 가운데가 불쑥 솟구쳐 있었고 여인의 시선이 종종 그곳에서 멈춰서곤 했다. 이야기를 하는 사내의 시선도 마찬가지. 반 이상 드러난 여인의 젖가슴과, 입고 있는 치마 가지고는 도저히 가릴 수 없는 속옷으로 시선이 정지하곤 했다.

『인간의 속성 가운데 하나는 끊임없이 변한다는 것이오. 이에 대립되는 신의 속성 가운데 하나는 변하지 않는 영원성이오. 신과는 달리 때때로 변하는 인간은 존재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끝없이 애쓰며 신은 못되더라도 신의 영역 근처에서라도 얼쩡댈 수 있기를 부단히 애썼소. 하지만 날개가 없는 인간은 비상을 꿈꾸면서도 늘 추락해왔소. 그러면서 인간은 신의 영역과 인간의 영역을 넘나들 수 있는 매체를 찾았소. 새였소. 영원의 세계로 비상할 수 없었던 인간이 찾은 것은 날개가 달린 새였소.

작지만 무한한 공간으로 비상할 수 있는 새. 그 가운데서도 독수리는 수직 비상이 가능한 새 중의 왕이었소. 한번 움켜쥐면 결코 놓치는 법이 없는 독수리의 발톱과, 상대의 간장을 꿰뚫을 듯한 눈, 그 눈은 태양을 직시할 수 있는 유일한 눈이었소.』

독수리, 독수리가 어쨌다는 것인가.

여인은 화제를 바꾸고 싶었다. 남자와 여자가 벌거벗고 목욕하는 이곳에서 알아듣지도 못하는 독수리 이야기를 해대는 사내를 도대체 이해할 수 없었다.

『불과 태양을 숭배하던 조로아스터의 지팡이 위에도 늘 독수리 한 마리가 자리하고 있었소. 독수리는 권력과 신성(神性)을 대변하는 것이오. 그 의미는 현대에도 잘 나타나고 있소. 전세계에 권력을 휘두르는 미국 백악관의 문장(紋章)도 독수리요, 몇몇 강대국의 최고 통치자의 상징물도 독수리 형상을 하고 있소. 날개를 편 독수리. 바로 파라바하의 형상이오.』

여인이 의자에서 일어나 침대로 다가갔다.

『아저씨, 서비스 받으시죠.』

사내의 눈과 여인의 눈이 겹쳤다.

사내의 눈빛이 독수리처럼 강렬하게 빛났다. 여인은 느낄 수 있었다. 사내의 그 눈빛이 자신의 젖가슴을 터트릴 듯 헤집는 것을. 자신의 몸 깊숙한 곳으로 뜨겁게 파고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여인의 몸이 파르르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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