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월 25일이면 김대중 대통령의 새 정부가 출범한다. 새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시대를 마감하고 대망의 21세기를 열여 나가야 하는 막중한 책무를 안고 있다. 향후 5년은 2000년대의 한국의 위상을 가늠하는 마지막 시험기라는 점에서 새 정부에 거는 국민적 기대가 그 어느 때보다도 크다. 특히 새 정부는 국경없는 지구촌시대를 슬기롭게 헤쳐나가기 위해 과학기술의 획기적 발전과 첨단산업군의 초일류 육성, 전방위 통상외교 등을 통해 21세기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주문이다. 이에 전자신문은 신년 특별기획으로 「새정부에 바란다」를 마련해 과학기술, 통상, 정보통신, 방송, 중소기업 등 5개 부문의 정책방향을 전문가의 기고를 통해 점검해 본다.
<편집자>
조성락(趙成洛)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 부회장
IMF태풍에 불안감을 느낀 우리 국민들은 최근의 국가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경제대통령」을 내세운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에게 그 지도자의 역할을 맡겼다. 대통령이 선두에 서서 경제위기를 극복하면서 과학기술 중심의 국가운영을 주도해 나가겠다는 공약에 각별한 기대를 걸면서 과학기술계는 과학기술대통령의 출현을 학수고대하고 있다.
김 당선자는 대선공약으로 과학기술처의 위상 격상, 연구개발투자비를 GNP 대비 5%로 확대, 과학기술자 우대, 국제기술시장 상설, 출연연구소 자율성 확대 등을 제시했다. 또 과학기술기본법을 제정, 대통령 직속의 「국가과학기술위원회」를 설치하여 과학기술정책 종합조정 기능을 확립하고 총예산의 5%를 정부연구개발투자로 할당하겠다고 천명했다. 이들 공약 중에는 GNP대비 5% 연구개발투자와 같이 실천에 많은 어려움이 따르는 내용도 일부 포함되어 있으나 무엇보다도 과학기술인의 이목을 집중시킨 점은 최고 통수권자의 강력한 의지가 없으면 과학기술의 진흥은 요원하다는 인식을 함께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 2개월 후면 본격적인 새 정부가 출범하게 되며 이에 따라 「준비된 대통령」의 이미지에 맞게 과학기술정책 추진에 대해서도 면밀한 점검과 준비가 필요하다.
새 정부는 먼저 대선공약에 대한 재점검이 필요하다. GNP 대비 5%의 연구개발투자는 6공화국 초부터 통치권 차원에서 제시된 과학기술정책의 핵심적인 의지이나 미국, 일본, 독일 등 선진국의 경우도 3%에 미치지 못하는 등 그 사례를 찾아 볼 수 없는 높은 것으로서 현실적으로 달성 가능한 수치인지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도 있으므로 너무 수치에 연연할 것이 아니라 선진국의 사례 등을 감안하면서 우선순위에 따라 재검토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따라서 통치권 차원에서 우라나라의 과학기술 수준과 잠재력을 고려하여 우리 현실에 맞는 한국형 과학기술 개발전략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과학기술정책의 종합조정은 경제정책과 아울러 문민정부가 가장 실패한 부문 중의 하나여서 획기적인 개혁이 필요함은 분명하나 신설 계획인 국가과학기술위원회와 현행의 과학기술장관회의나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간의 기능구분이 명확히 전제되지 않을 경우 오히려 상당한 혼선을 빚을 가능성이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또 각 부처에 산재되어 있는 과학기술 관련업무를 이스라엘과 같이 과학기술처가 종합조정하는 것도 고려될 수 있을 것이다.
과학기술기본법의 제정은 현행의 「과학기술진흥법」 또는 「과학기술혁신을 위한 특별법」의 기본 골격과 큰 차이가 없을 것으로 보여 새로운 입법에 대한 공감대가 확산되어 있지 않은 듯하다. 동 법의 내용으로서 현재까지 알려진 국가과학기술위원회의 설치근거와 과학기술예산을 정부 총예산의 5%로 명시하는 문제는 굳이 필요하다면 기존의 법을 개정해서라도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여겨진다. 95년 제정된 일본의 「과학기술기본법」과 같은 역할은 현행 두 개의 법의 일부 개정으로도 충분히 가능할 것이며 다만 국가원수나 정부의 법 집행의지 여하에 달려 있다고 본다.
다음으로 현행 과학기술정책의 기본골격은 변함없이 유지되어야 한다. 비록 작년 4월 제정된 「과학기술혁신을 위한 특별법」과 12월 초 부처간에 합의된 「기술혁신 5개년계획」이 IMF상황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라서 현실에 맞게 일부 내용의 수정보완은 불가피하다 하겠으나, 동 내용이 21세기 기술선진국 진입이라는 국가적 비전을 제시한 것이고 2년이라는 오랜 동안 많은 전문가들이 심혈을 기울여 마련한 것이라는 점에서 과거와의 단절이나 새로운 계획의 빈번한 수립보다는 지속적인 추진이 필요하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정부 부처별로 비교적 방만하게 운영되어 오고 있는 국가연구개발사업은 효율성 위주로 재편돼야 할 것이다. 연구개발의 중복투자는 없는지 또는 지원을 통해 경쟁을 유발해야 할 분야는 적정한지, 관리, 평가는 적절히 수행되고 있는지 등을 정확히 진단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안정적인 연구개발 분위기 조성이 필요하다. IMF체제하에서 기업 및 공공연구소의 리스트럭춰링도 급격히 진행될 것으로 예견되어 연구원의 신분불안과 연구개발계획의 중단 및 대폭 수정 등에 따른 불안감이 팽배되고 있어 이의 해소에 주력해야 할 것이다.
그 동안 쌓아올린 연구개발의 중단은 미래의 기술종속과 영원한 개도국이라는 오명으로 연결될 수도 있으며 21세기의 밝은 미래를 보장해 줄 수 없기 때문이다.
온 국민이 열망하는 과학기술대통령상이란 기술혁신을 국가발전의 핵심 축으로 삼는 국가경영의 기본틀 위에서 정책의 일관성 유지와 집행의 효율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결연한 의지와 강한 실천력을 갖춘 지도자상이다. 실천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구호성의 기술드라이브정책 선언은 더 이상 국민에게 꿈과 희망을 줄 수 없다.
이제 김 당선자와 새 정부는 정치논리를 떠나 장기적인 안목과 폭넓은 통찰력을 가지고 우리나라 현실에 부합하는 안정적인 한국형 과학기술정책을 추진할 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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