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이브> 송구영신의 자세

우리 풍속에 송구영신을 뜻하는 「수세(守歲)」가 있다. 섣달 그믐날에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밤을 밝히고 새벽달이 기울 때까지 지난해를 되돌아보며 새해를 설계하는 풍속이다. 이날 밤에 자면 눈썹이 센다고 했다. 조선 후기 홍석모가 연중 행사와 풍속을 정리한 「동국세시기」에 나오는 수세에는 이처럼 근신의 뜻과 길복을 기다리는 기원이 서려 있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누구나 묵은 해를 버리고 새해를 맞는 송구영신의 자세로 새 출발을 다짐한다. 보신각 종소리를 들으며 지난 한해의 반성과 새해 설계로 밤을 지샌다. 그러나 새해가 되면 많은 이들이 얼마안가 지난해나 올해나 거의 비슷한 삶을 계속한다. 언제나 똑같은 회언과 소망을 되풀이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데는 실천의지 부족이 가장 큰 요인이다. 새로운 계획을 세우고 새 출발을 다짐하지만 그것은 머리속의 계획이요, 마음만의 다짐으로 끝났기 때문이다. 작심삼일(作心三日)이란 말로 치부하기에는 부끄럽지 않을 수 없다.

새해에는 머리속의 계획이나 마음만의 다짐에 그치지 않고 실천하는 정성, 그리하여 희망찬 21세기를 준비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제조건이 있다. 과거에 대한 철저한 정리가 따라야 한다. 그것이 없다면 전진하는 삶의 주인공이 되기 어렵다. 왜냐하면 과거의 줄이 자꾸만 우리를 사로잡아 뒤로 당기기 때문이다.

다사다난했던 한 해도 이제 채 하루가 남지 않았다. 올해는 KAL기 괌 추락사건에서 기아부도사태, IMF한파까지 겹쳐 온 국민에게 더 없이 큰 시련을 겪은 한 해이다. 그래서 온갖 괴로움을 잊기 위한 망년의 심정이 그 어느 해보다 더하다. 그러나 새해는 자동적으로 오거나 밝아오는 것은 아니다. 묵은 해가 아무리 많이 가도 묵은 타성을 버리지 않으면 망년이나 송년은 없을 것이다. 이제 지난 일의 과오를 반성하고 새로운 각오를 다지는 수세의 자세로 차분하게 새해를 설계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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