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 IMF 체제와 행복

국가부도 위험에 직면해 우리는 새삼스럽게 행복이란 과연 무엇인지를 묻게 된다. 바른 동반자를 만난다든지, 직업적인 성공을 거둔다든지, 부를 획득한다든지가 행복의 조건일 수 있다. 행복의 기준이 객관적인가, 주관적인가 하는 질문과도 연관되는 이와 같은 문제에 대해 과학은 과연 무슨 대답을 내놓을 수 있을까.

과학의 여러 가지들 중에서도 심리학이 무슨 대답을 가지고 있음직한데, 심리학은 오랫동안 긍정적인 정서보다는 부정적인 정서들에 초점을 맞춰 왔다. 1967년부터 1995년까지 「심리학논문 요약집(Psychological Abstracts)」을 조사해 보니 5천1백19편이 분노, 3만8천4백59편이 불안, 그리고 4만8천3백66편이 좌절에 대해 언급한 반면, 행복에 관한 논문은 1천7백10편에 불과하다고 한다. 생활의 만족에 관한 2천3백57편과 즐거움에 관한 4백2편의 논문을 더한다 해도 20 대 1이라는 양적 차이는 줄어들지 않는다. 그러나 최근에 이르러 행복한 사람은 누구이며, 그 까닭이 무엇인지를 묻는 논문들이 차츰 늘어가고 있다.

고대 철학자들은 행복이란 이성적 반성의 삶에 동반하는 것으로 여겼다. 로마의 철학자 키케로는 그러기에 『행복한 바보도 없고, 불행한 현자도 없다』고 말한 바 있지만, 현대인들은 행복마저 과학적으로 연구하고 싶어한다. 과학적 관찰에 따르자면 우울한 사람에 비할 때 행복한 사람은 덜 자기집중적이고, 덜 절대적이고, 질병에 대해 더 강한 편이다. 그들은 또한 더 사랑스럽고, 용서를 잘하고, 활력적이고, 결단력 있고, 창조적이고, 사교적이고, 남을 기꺼이 돕는다.

정체를 밝히기 어려운 행복을 추적함에 있어서, 부가 복지를 예견케 하는지도 중요한 질문거리가 된다. 문자 그대로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다는 데 동의하는 사람은 거의 없긴 해도, 많은 사람들이 돈이 적어지면 행복도 적어지리라는 데 동의한다. 95년 미국의 대학 초년생들 가운데 74%가 「필수적인」 또는 「매우 중요한」 인생목표가 「재정적으로 매우 유복해지는 것」이라고 답했는데, 이는 70년의 39%에 비하면 상당히 증가한 것이다. 인생목표를 묻는 19개의 문항 중 단연 수위를 차지한 이와 같은 응답은 「가정을 일구는 것」이나 「곤란 중에 있는 타인을 돕는 것」 등을 단연 뒤로 따돌리고 있다. 그러나 과연 부와 복지는 서로 연관되는 것일까.

우선, 부유한 나라들에 사는 국민은 그처럼 부유하지 못한 나라들에 사는 국민들에 비해 더 행복한가. 포르투갈 국민은 열 명 중 하나가 매우 행복하다고 말한 반면, 네덜란드 국민은 열 명 중 넷이 그렇다고 대답하고 있다. 그렇다면 경제적 부가 이러한 차이를 설명해 줄지도 모른다. 그러나 국가적 부는 시민의 제반 권리, 문화 정도, 민주주의의 지속 연한과 같은 다른 요소들과 복합되게 마련이다.

둘째로, 한 나라 안에서 부유한 개인들이 가장 행복한가. 방글라데시같이 가난한 나라들에서는 재정적 만족은 분명히 복지지표로서 적당하다. 그러나 일단 개인들이 생활의 필수조건들을 갖추고 나면, 점증하는 풍요는 놀랍게도 별로 중요시되지 않는다. 구미 여러 나라에서 수입과 행복의 연관관계는 놀랍게도 미약하다.

마지막으로 경제학자 갈브레이스가 57년 미국을 「풍요로운 사회」로 묘사했을 때, 미국의 1인당 평균소득은 연간 9천 달러였다. 1만8천 달러가 넘는 오늘날 사람들은 두 배 이상으로 행복해졌는가. 소비는 그렇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가장 행복하다」는 응답은 오히려 35%로 낮아졌다. 이혼은 2배로 늘었고, 청소년 자살은 3배로 늘었으며, 청소년 범죄로 인한 체포는 여섯 배로 늘었다.

현대 서구문화의 물질주의가 결코 행복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사실, 풍요로운 나라들에서 경제성장이 인간다운 기품을 분명하게 진작시키지 못한다는 사실을 앞에 둔 채, 우리는 어떤 결단을 내릴 것인가. 그렇다고 동양적인 「안빈낙도」가 과연 그 대안이 될 수 있을까.

한마디로 말해서 우리는 오늘과 같은 상황에 처해 한편으로는 자연친화적인 자세를 유지한 채 물질적인 필요의 충족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한편, 내면적으로는 자기자신을 좋게 보면서도 자아를 통제할 수 있어야 하고, 낙관적이어야 하고, 향외적이어야 한다는 심리학자들의 발견과 충고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 같다.

<한국문화정책개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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