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 양극화
다사다난했던 97년, 부품업계의 여러 이슈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것 중 하나는 업계의 양극화를 꼽을 수 있다. 시장지배력을 갖춘 선발업체들은 외형과 실속면에서 호조를 보인 반면 후발업체들은 갈수록 입지가 약화되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더욱 뚜렷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에따라 전자산업 전반의 총체적인 불황에도 불구하고 품목별로 선발군에 속한 우량부품업체들은 두자릿수의 매출 성장률과 높은 순이익을 실현하며 올해도 고성장세를 이어갔으나 시장지배력면에서 열세에 놓인 중, 하위권 대부분의 후발업체들은 고전을 면치 못했다.
특히 연초 한보사태로 촉발된 대그룹들의 연쇄부도가 연말에 이르러 총체적인 외환위기에 따른 IMF시대로 이어지면서 중소 부품업계의 자금난이 사상 최악으로 치달으면서 이같은 선, 후발업체간의 양극화 현상은 갈수록 심화되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부품업계의 양극화 흐름은 현재까지 PCB업계에서 가장 뚜렷하다. 대덕전자, 코리아써키트 등 일부 선발PCB업체들은 고부가 다층기판(MLB)부문에서의 호조를 바탕으로 올해도 30% 안팎의 외형성장과 높은 순이익 창출이 기대된다. 이들 선발업체는 특히 수출비중도 높아 최근 환율급등에 따른 상당한 환차익까지 발생, 톡톡히 재미를 보았다.
이와달리 내수비중이 높은 후발 PCB업체들은 심각한 자금난에다 중견 전자, 컴퓨터, 정보통신업체들의 잇따른 부도로 악성 부실채권이 급증,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으며 가전, 컴퓨터 등 주력시장의 침체로 벼랑끝에 몰리고 있다. 이에따라 최근 상장PCB업체인 이지텍이 부도를 내고 쓰러지는 등 중하위권업체들의 입지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는 상황이다.
PCB업계와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대부분의 부품업종들이 양극화라는 대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다. 콘덴서 분야는 삼영전자, 삼화콘덴서, 삼화전기 등 재무구조가 탄탄한 일부 선발 우량기업들과 후발업체간의 격차가 갈수록 벌어지고 있으며, 커넥터 분야는 AMP, 몰렉스, 히로세 등 외투업체들과 한국단자, 우영 등 선발업체들의 기세가 높아지고 있다.
이밖에 싸니전기, 고니정밀, 국제전열공업 등 3강 체제가 갈수록 굳어지고 있는 수정디바이스분야를 비롯해 대부분의 부품업계가 전반적으로 「되는 회사는 더욱 잘 되고, 그렇지 못한 회사는 날이 갈수록 사업을 영위하기가 어려워지는」 양극화 현상이 일어나 올해 부품업계의 커다란 흐름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현상은 부품업체의 대외 경쟁력을 좌우하는 기술력, 맨파워, 자금동원능력, 관리력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선, 후발업체의 격차가 커지고 있는 데서 비롯됐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즉 우리경제의 고질적 병폐인 고급인력의 편중과 자본의 집중이 중소 부품업계에도 만연돼 부품산업의 고도화와 장치산업화, 그리고 기술집약화라는 시대적 변화와 맞물려 업계구조재편을 촉진시키고 있다는 얘기다.
중견 및 중급 전자업체들의 잇따른 몰락도 부품업계 양극화의 중요한 요인으로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대목이다. 90년대 초반 카오디오산업의 몰락으로 시작돼 최근 소형가전과 컴퓨터에 이르기까지 중견 세트업체들이 도태되고 전자업계의 극소수 대기업 중심으로 완전 재편되면서 허리가 없는 구조적 모순이 부품업계의 양극화를 불렀다는 분석이다.
부품업계 관계자들은 중소부품업체가 고르게 성장하고 있는 대만에 빗대어 『IMF시대를 맞아 대기업들조차 수익성이 높은 수종산업 육성으로 전략을 수정, 부품업계의 양극화는 더욱 심화될 것』이라며 『그러나 허리가 약하면 사람이 부실해지는 것처럼 현 부품업계의 양극화현상은 우리나라 전자산업의 견실한 성장을 가로막는 최대 걸림돌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이중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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