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가전업체, 98년도 사업계획 수립 난항

「가전대기업에 납품하는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물량을 도대체 얼마로 보고 계획을 잡아야 할 것인가」 「원자재가 상승을 소비자가격에 반영해야 하나」 「침체된 소비자들의 구매심리를 뚫고 매출을 늘릴 뾰족한 방법은 없을까.」

중소가전업체들이 내년도 사업계획을 짜느라 골머리를 앓고 있다. 특히 제품을 OEM방식으로 생산, 대기업에 납품하는 중소기업들은 대기업들의 사업계획이 아직까지 나오지 않고 있어 매출 및 사업계획을 수립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한 실정이다.

실제 예년 같아서는 지금쯤이면 이듬해 전체 발주물량과 라인업 현황에 대해 협력업체들에 구체적으로 통보하던 가전업체들이 올해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으며 일부 발주를 한 업체들도 상반기 물량만을 대략적으로 얘기하고서는 그 뒤는 잘모르겠으니 알아서 하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고 중소기업 관계자들은 토로한다.

중소가전업체 관계자들은 『가전대기업이 그동안 협력해왔던 업체들과 관계를 단절하고 소형가전사업을 철수하려는 움직임을 구체화하면서 이처럼 불분명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며 『자신들의 상황도 어려우니 이제는 각자 제 살길 찾자는 얘기가 아니겠느냐』고 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중소가전업체들이 스스로 제 살길을 찾기에는 이중, 삼중의 장벽이 가로막고 있다. 하루에도 몇차례 널뛰기를 하는 환율 때문에 어디다 기준을 두고 수출입 물량을 조절하고 어느 품목을 단종해야 할지 몰라 관련 실무자들은 매일같이 계획서를 바꾸고 있으며 최근 한달여간은 모든 수출입 관련 업무를 중단하고 환율이 안정되는 시점을 기다리는 상황이다.

또한 모터 및 마이콤, LCD 등 각종 부품을 공급하는 협력업체들은 하루같이 가격을 인상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으며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화학수지 등 사출물 재료에 대해서도 수입을 독점하고 있는 대기업들이 환율인상을 겨냥해 담합, 거래를 중단하고 있기 때문에 제품생산에 차질을 빚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소형가전을 생산하는 한 중소업체 사장은 『사업계획을 짜기가 이처럼 어렵기는 처음』이라며 『이런 상황들 때문에 그동안 자구책 마련을 위해 틈새시장을 개척하고 신유통망을 보강하면서 생산혁신에 나선 노력이 모두 수포로 돌아갈까 걱정』이라며 노심초사하고 있다.

연말을 열흘 앞두고서도 내년 사업계획조차 수립하지 못하고 있는 암담한 모습은 국내 가전업체가 현재 겪고 있는 어려움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인 셈이다.

<정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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