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디지털 가전시대 일본 따라 잡기 (하)

삼성전자는 지난 96년 도시바와 마쓰시타가 디지털 다기능 디스크(DVD)플레이어를 내놓은 지 불과 한달 만에 같은 제품을 출시하고 세계시장 선점에 나서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DVD플레이어가 등장한 지 1년이 넘도록 10여종에 불과한 전용타이틀과 1만대도 되지 않는 플레이어 판매량으로 인해 일본업체와 거의 동시에 출시한 의미를 퇴색시켰다. 물론 전세계적으로 DVD플레이어 시장이 업체들의 기대만큼 팽창한 것은 아니다. 미국과 중국이 각각 40만∼50만대, 일본이 30만대 등 전세계적으로 2백만대에도 미치지 못할 전망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미국에서는 5백여종의 타이틀이, 일본에서는 3백여종의 각종 타이틀이 쏟아져 내년 이후 DVD플레이어시장이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새로운 제품이 시장을 형성하는데 내수규모와 유관산업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디지털 가전제품이 일본에서 꽃을 피우고 있는 것은 기본적으로 인구 1억명에 달하는 내수시장과 방대한 소프트웨어, 영상산업계가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상품기획팀의 한 관계자는 『미국시장에도 일본의 도시바, 마쓰시타, 소니 등과 거의 동시에 진입했지만 비빌 언덕이 없는 내수 때문에 품질 및 가격경쟁력을 확보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한다.

또 한가지 국내업체들을 불리하게 만드는 요인은 취약한 부품산업이다. 캠코더의 경우 사람 눈의 역할을 하는 고체촬상소자(CCD), 데크메커니즘을 구동하기 위한 소형모터 등 수많은 핵심부품이 필요하나 대부분 일본에서 수입하고 있는 상황이다. 민수용 CCD의 경우 일본이 전세계 수요의 90% 이상을 공급하고 있다.

올 초 국내업체로는 처음으로 디지털 캠코더를 출시한 삼성전자가 일본으로부터 폭 6.35㎜ 디지털 캠코더용 테이프를 공급받지 못해 제품생산에 차질을 빚었다. 이처럼 핵심부품을 일본에서 조달해야 하는 상황은 디지털 가전사업과 관련해 국내업체들이 대일경쟁력을 확보하는데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업체들이 디지털 가전사업에서 대일경쟁력을 확보하는데 있어 우려되는 부분은 핵심기술을 제공받는 데 따른 특허료 문제다. DVD의 경우 세트당 10∼15%의 특허료가 부가될 전망인데 국내업체들이 DVD규격제정에 참여하지 못한데다 원천기술 지분마저 미미해 일본업체들보다 최소한 세트당 5% 안팎의 특허료 부담을 더 안고 싸움을 시작해야 할 형편이다.

지난 96년 미국 특허취득건수 상위 10개사 가운데 캐논, NEC, 히타치 등 일본업체가 8개를 차지했다는 사실은 국내업체에 위협적인 사실이 아닐 수 없다. 소니, 도시바, 마쓰시타, 히타치, 파이어니어 등 전세계 시장을 주도해온 일본업체들의 막강한 특허파워가 디지털시대에도 국내업체들의 발목에 무거운 족쇄를 채울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또 공동의 이익을 위해 협회나 기구를 중심으로 신속하게 단결해 정보를 공유하고 공동마케팅을 펼치는 일본업체들의 특징 역시 대내적으로 강력한 무기가 되고 있다.

과거 아날로그 가전시대에선 나름대로 틈새시장 공략이나 가격경쟁력으로 세계 시장에 발을 디딜 수 있었지만 승자와 패자만이 존재하는 디지털시대에서는 어떻게 헤쳐 나갈지 주목된다.

<유형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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