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97 전자산업 총결산 (10);영상산업

영상관련업계의 97년은 총체적 위기에서 헤어나지 못한 한해였다.

영화, 음반, 비디오시장이 크게 위축되면서 대기업을 비롯한 업계는 경상수지 적자 줄이기에 급급했다. 이에 따라 여기저기서 사업 지속 여부에 대한 논란이 거듭됐고 대기업들마저 초긴축경영이란 「운명」에 순응해야만 했다. 더욱이 영상산업의 젖줄 역할을 해온 프로테이프 시장은 지난해의 한파가 올해에도 계속 이어져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기도 했으며 음반시장도 히트곡을 양산하는 스타의 부재와 음반의 가격파괴 현상으로 붕괴 조짐까지 보이기도 했다. 영상산업이 더 이상 젖과 꿀이 흐르는 꿈의 산업이 아니라는 사실을 절감한 한해였던 것이다. 그나마 케이블TV는 아직 미성숙 단계에 있지만 시장의 가능성을 타진한 한해였다. 적자와 경영수지 악화에서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시청인구가 2백50만 가구에 육박하고 케이블TV가 광고매체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는 사실은 업계에는 매우 고무적인 현상으로 받아 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적자폭의 확대는 서둘러 풀어야 할 과제로 지적됐다. 현대그룹의 현대방송과 KMTV의 경우 각각 무려 2백19억원과 1백25억원의 적자를 기록했고 삼성그룹의 캐치원과 Q채널은 각각 1백58억원, 1백25억원의 적자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케이블TV 프로그램 공급사(PP)들은 나름대로 자구책을 펼쳐 자신들이 제작한 프로그램을 지상파 TV와 지역민방에 공급,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특히 일부 PP들은 자체 제작프로그램을 해외에 수출하는 등 활로개척에 나서 비상한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프로테이프 시장은 대히트작 아니면 흥행참패란 양극화 현상을 보였다. 중급 흥행작은 아예 자취를 감췄으며 예술성이 높은 아트비디오는 사장되기가 일쑤였다. 이에 따라 프로테이프업계의 경영난도 크게 가중됐다. 우일영상, 세음미디어, SKC, 영성프로덕션, 디지탈미디어 등 중견 프로테이프 제작사들은 이를 타개하기 위해 조직재편 및 유통망 개선등 나름대로 자구책을 펼쳤으나 극심한 수요감퇴 현상으로 고전을 거듭했다.

대기업의 영화사업은 올해의 경영난의 「주범」으로 꼽힐 만큼 최악의 성적을 거뒀다. (주)대우의 경우 올해 제작비 전액을 투여한 「불새」와 「현상수배」가 흥행에 실패하면서 자금운용에 어려움을 겪었으며 엎친데 덮친 격으로 수입외화마저 관객동원에 실패하면서 경상수지악화를 불러왔다.

삼성영상사업단도 별다른 수확을 거두지 못했다. 올해 우노필름과 전속계약을 맺어 한판승부를 벌인 「비트」가 흥행에 참패했으며 「쁘아종」과 「모텔선인장」의 경우에도 저조한 성적에 그쳤다. 논란을 거듭한 채 수입해 온 브루스 윌리스의 「제5원소」도 삼성의 발표대로 짭잘한 수입을 올리지는 못했을 것이라는 게 주위의 관측이다.

SKC와 현대방송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SKC의 경우 판권부족으로 시장점유율이 급격히 하락했고 우리영화로서 처음 제작한 「용병이반」과 수입외화 「에비타」가 흥행에 실패함으로써 사업 지속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다. 뒤늦게 참여한 현대방송은 영상사업 추진에 강력한 의지를 보였으나 하반기에 몰아닥친 환율상승으로 몸살을 앓아야 했다.

이밖에 제일제당은 「인샬라」 「바리케이트」 「억수탕」등 4∼5편의 우리영화를 제작했으나 흥행에는 실패, 톡톡한 수업료를 지불해야만 했다.

음반시장도 올 한해 꽁공얼어 붙었다. 이에 따라 1백만장의 판매량을 올린 음반을 한장도 건져내지 못했다. 밀리언셀러 가수들의 활동부진으로 가요시장은 침체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가격파괴현상은 도, 소매상들의 입지를 크게 좁혀 놓기도 했다. 이를 견디지 못한 도매상들의 잇단 부도는 시장의 근간을 뒤흔들었다. 이에 따라 가격정찰제의 필요성이 제기됐고 업계는 이를 관철시켰다. 업계는 가격정찰제의 시행을 시장 부침속에서 일궈낸 최대의 성과로 꼽고 있다.

음반업체들의 올해 성적을 보면 음반시장이 얼마나 위축됐는가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세음미디어는 올해 7장의 음반을 발매했으나 실적다운 실적을 올리지 못했으며 LG소프트는 한때 「음반업포기설」에 휘말리기도 했다. 특히 금강기획은 음반판매 대행업을 추진하는 등 의욕을 보였으나 매출부진으로 돌연 「숨고르기」에 들어가기도 했다.

그러나 삼성영상사업단의 경우 경상수지 적자에도 불구, 꾸준한 매출로 내년을 기약할 수 있는 성과를 거뒀다는 자체 평가를 받았으며, 웅진뮤직도 경기부침에도 3백50억원의 매출을 올려 가능성을 엿보게 했다.

게임시장은 출시 편수 증가와 외형 성장에도 불구, 메이저사와의 일괄 공급계약을 통한 로열티부담 상승으로 외화내빈이란 성적을 거두었다. 그러나 SKC와 삼성영상사업단은 PC게임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성장을 보였으며 LG소프트와 쌍용도 고군분투했다. SKC의 경우 올해 최다 출시편수인 35편의 타이틀을 출시하고 1만장 수준의 흥행작도 적지 않게 양산, 6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으며 삼성영상사업단도 「레이맨 시리즈」 「세븐스 리전」등 30여편의 신작 타이틀로 큰 바람을 일으키기도 했다.

LG소프트는 올해 20여편의 타이틀을 출시해 「스톤엑스」 「다크레인」 등의 히트작을 냈으며 쌍용도 어려운 시장상황에서도 자리지키기에 총력을 쏟았다는 평가다. 동서게임채널, 비스코등 전문업체들의 성적은 눈여겨 볼만 할 정도로 성장을 거듭했다.

그러나 올 게임업체들의 경영수지는 한마디로 「속빈강정」이었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게임업체들이 판권 확보에 급급함으로써 엄청난 로열티를 지불했기 때문이다. 특히 환차손에 의한 로열티 부담은 내년의 경상수지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되고 있는 실정이다.

올해의 영상산업은 앞서 언급한대로 「진퇴양난의 형국」이었다. 사업을 포기하자니 시장참여의 명분이 사라지고 계속하자니 경상수지 적자는 눈덩이처럼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더 이상의 가능성을 예측할 수 없는 「불황의 터널」이 일년 내내 업계를 짓눌렀던 것이다.

그러나 가능성의 작은 불빛마저 꺼지지는 않았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유통망을 정비하고소프트웨어의 일관공급체제를 갖춤으로써 비용을 상대적으로 줄일 수 있는 토양을 만들었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특히 앞다퉈 나선 업계의 구조조정의 노력은 외형의 빈곤속에 내년을 기약할 수 있는 올해의 내적 성과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모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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