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소문만 무성하게 나돌았던 디지탈이큅먼트의 네트워크제품 사업부문 매각이 현실화함에 따라 그 배경에 업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최근 디지탈은 네트워크제품 사업부문을 네트워크 전문업체인 케이블트론시스템즈에 매각했다. 전격적으로 성사된 이번 거래금액은 4억3천만달러. 디지탈은 네트워크제품 사업부문을 매각하는 조건으로 제품공급권과 서비스권을 따냈다. 이에 따라 디지탈은 기존 장비뿐 아니라 케이블트론의 장비까지 판매할 수 있게 됐다.
디지탈은 이번 매각으로 네트워킹 솔루션 제공능력이 오히려 확대됐다. 디지탈이 사업부문 매각을 케이블트론과의 전략적 협력관계 구축이라는 용어로 표현한 데서 그 일단을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엄밀하게 보면 이번 거래는 디지탈이 네트워크사업의 후퇴를 선언한 것이라는 게 업계의 진단이다.
디지탈은 중대형 컴퓨터, 서버의 영향력을 등에 업고 지난 94년 네트워크시장 입성을 시도했고 국내에서만 연간 2백억∼3백억원의 매출을 올리며 순조로운 항해를 계속했다. 이 성과는 시스코시스템즈, 스리콤, 베이네트웍스 등 네트워크 전문업체들의 매출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었지만 나름대로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디지탈은 이 과정에서 주문자상표부착생산방식(OEM) 대신 장비를 직접 개발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자사의 중대형 컴퓨터, 서버에 적합한 장비를 공급함으로써 서버분야는 물론 네트워크분야에서 영향력 확대를 꾀했던 것이다.
그러나 디지탈은 이번 네트워크장비 사업부문 매각으로 네트워크장비 개발의지를 포기함은 물론 이 분야에 직접 관여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물론 디지탈은 여전히 네트워크사업에 한쪽 발을 걸치고 있는 상태다. 그러나 이는 네트워크분야에서 공급업체, 유통업체의 디지탈을 나타낼 뿐 전세계 네트워크산업의 흐름을 주도할 만한 영향력을 확보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뜻한다.
케이블트론은 디지탈 네트워크제품 사업부문 인수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둘 것으로 예상된다. 케이블트론이 얻게 될 실익은 무엇보다 제품의 라인업을 단행할 수 있게 됐다는 점. 케이블트론은 지금까지 고가의 초대형 MMAC플러스 새시를 중심으로 네트워크장비를 개발, 공급, 가격경쟁에서 상당한 손해를 감수해야 했다.
케이블트론은 이번 인수를 통해 디지탈의 단품 형태 장비를 자사의 제품군에 편입시킴으로써 약점을 보완할 수 있게 됐다. 특히 디지탈의 기가비트이더넷 스위치와 고속이더넷 스위치에 더해 디지탈의 라우팅기술을 흡수하게 돼 인수에 따르는 이점을 톡톡히 누릴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에 더해 케이블트론은 미국을 제외한 아시아, 유럽 지역에서 디지탈의 유통망을 확보함에 따라 더욱 활발한 영업력을 과시할 수 있게 됐다.
디지탈과 케이블트론의 협력관계 체결에 따라 국내 지사들은 통합의 길을 걸을 것으로 예상된다. 계약내용을 보면 한국디지탈의 네트워크 사업부문 인력 전부가 한국케이블트론으로 옮겨가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와 관련한 구체적인 지침이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 한국디지탈의 한 관계자는 『서류상 한국디지탈 네트워크 사업부문 인력은 모두 한국케이블트론으로 배치될 것이지만 실제적인 업무는 한국디지탈에 상주하며 수행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양사가 처한 현실과는 별개로 이번 사건은 IBM, 휴렛패커드, 컴팩 등 네트워크장비 개발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중대형 컴퓨터, 서버업체에도 상당한 충격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네트워크분야에서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이들 서버업체가 네트워킹기술의 전문화, 고도화를 위해 투자를 계속 할 것인지 아니면 디지탈처럼 개발을 포기할 것인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일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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