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서비스업계, "가상사회" 건설 특명

연구소에 근무하는 K씨는 여느 때처럼 저녁식사를 마친 후 PC통신에 접속한다. 자신에게 배달된 편지를 읽어본 후 그가 찾아간 곳은 자신이 부시솝으로 활동하고 있는 기업문화연구동호회.

대화방으로 들어가자 낯익은 이름들이 서로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고 K씨도 뒤질세라 얘기보따리를 풀기 시작한다. 「IMF로 회사 분위기가 어수선하기 짝이 없고 경기가 안좋아 올 연말 보너스는 받을 수 있을지 걱정이며∥」

K씨가 동호회에 가입해 이처럼 얘기보따리를 풀어놓기 시작한 것도 어언 1년. 생각해보니 그는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직원들보다도 동호회원들과 정서적으로 더 친한 사이가 됐다. 가상공간에서의 만남이었지만 그에게는 이 동호회가 새로운 사회무대이자 활동의 장으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국내에서 K씨처럼 온라인 공간에 공동체를 만들어 활동하는 사람 수는 줄잡아 2백만명. 천리안, 하이텔, 나우누리, 유니텔 등 국내 4대 PC통신에서 활동중인 동호회만도 무려 1천2백여개에 달한다.

온라인 공간에서 동호회 등의 형태로 공동체를 구성하고 있는 이들은 실제 생활공간에서 보다도 때론 더욱 활발하고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통신인과 네티즌에게 사이버 공동체는 현실생활과 병존하는 또하나의 가상의 사회공간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것이다.

「사이버 공동체를 장악하라.」

요즘 통신서비스 업체에 최대 과제로 떠오르는 것은 이 사이버 공동체를 장악하는 것이다. 사이버 공동체는 통신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에도 또다른 가능성의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가장 견고하게 사이버 공동체를 구성하고 이들의 활동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어떤 서비스와 공간을 제공할 것인가가 통신서비스 제공업체들의 최대 과제가 되고 있다.

사이버 공동체에서 형성된 여론은 어떤 것이며 이를 어떻게 수렴할 것인가의 문제도 이들 통신서비스 업체엔 양보할 수 없는 경쟁의 무기다. 생활의 터전이자 미디어로 자리매김되기 위해 전략적 기술적 아이디어가 총동원되고 있는 것이다.

국내 통신서비스 중 이 미디어로의 방향하에 사이버 공동체 장악에 가장 자신을 보이는 곳은 천리안을 운영하고 있는 데이콤이다. 이 회사가 사이버 공동체에 대해 이처럼 자신을 보이는 이유는 국내 최다의 유료 가입자를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30일로 유료 가입자수 1백만명을 돌파한 천리안은 국내 최다의 가입자 수를 토대로 신문, 방송, 잡지에 이은 제4의 미디어로 도약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정보와 문화가 결합된 신문화 창출을 기치로 천리안을 「종합, 생활미디어」로 만들어간다는 것이 이 회사의 목표다.

데이콤은 2002년까지 매출액의 15%인 연평균 2백80억을 투자, 2002년에는 2천억원의 매출을 달성하고 가입자를 4백만명으로 늘여 공고한 사이버 공동체를 만들어 나간다는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현재 63만 나우누리 유료 가입자와 이 중 67%인 42만여명을 동호회원으로 확보하고 있는 나우콤도 사이버 공동체의 형성과 공략에 열심이다. 이 회사는 2005년까지의 중장기 프로젝트에서 제1목표를 사이버 공동체의 강화로 설정했다.

지난 10월 조직개편에서는 기존의 콘텐츠팀을 컨텐트&커뮤니티팀으로 개편, 보다 적극적으로 사이버 공동체를 형성하고 이들의 활동을 활성화시키기 위한 작업을 진행 중이다. 특성있는 사이버 공동체를 육성, 게임과 온라인 광고, 쇼핑몰, 리서치 등 신규 사업을 진행시키는 것도 나우콤의 주요 비전 중 하나다.

오는 98년 2월부터 신개념의 통신서비스 「채널-아이」를 준비중인 LG인터넷은 통신서비스의 개념을 아예 인터넷 미디어로 설정했다.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통해 사이버 공동체를 만들어내고 그 안에서 활발한 상호 작용을 유도, 상거래와 같은 실질적인 활동까지 만들어 내겠다는 것이 채널-아이 서비스의 골자다.

LG인터넷은 인터넷 미디어로서의 구체적인 실천방향으로 사용자와 정보제공자간의 활발한 상호 작용이 수반되는 인터넷 멀티미디어 방송까지 선보일 방침이다.

이에 대해 LG커뮤니카토피아연구소의 김창민 선임연구원은 『과거 도구이고 수단이었던 통신은 이제 하나의 공간이자 채널이 되고 있으며 보다 많은 사람들이 좀 더 오랜 시간동안 모여 생활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 온라인업체들의 과제』라고 말했다.

과거 통신을 수단과 방법으로 인식하고 첫발을 내디뎠다면 이제는 사이버공동체와 현실공간과의 상호 작용을 연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김윤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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