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옥화 충북대학교 컴퓨터교육과 교수
현재 우리는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학교정보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전국의 교육청이나 학교별로 다소 차이는 있지만 실업계학교에 멀티미디어 컴퓨터와 인터넷이 접속된 실습실이 설치되고 교실마다 멀티미디어 컴퓨터와 실물화상기, 대형TV, OHP 등 교육선진화를 위한 각종 기자재가 제공되고 있다. 또 교사들에게는 교육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 컴퓨터를 한 대씩 지급하고 있으며 2000년까지는 모든 학교에 인터넷 전용선을 설치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계획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약 2조원 이상의 예산을 2000년까지 투입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러한 계획은 인구 대비 투자액으로 보더라도 세계적인 수준으로 다른 나라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교육은 정보통신기술의 활용으로 많은 영향을 받을 분야로 꼽힌다. 교육에 정보통신기술을 적용하면 초고속 원격교육이 가능해 도, 농간의 교육격차를 줄이거나 교육의 질을 높이고 언제 어디서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평생 학습사회로 진입하기가 더욱 쉬어질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기대는 새로운 교육매체가 등장할 때마다 들어왔던 이야기다. 텔레비전이 교육현장에 처음 소개되었을 때 강력한 시청각자료 제시의 가능성을 보고 이제 모든 교육이 텔레비전으로 대체되거나 교육에 있어 아주 중요한 자리를 차지할 것으로 감히 예언했다. 그러나 텔레비전은 책이나 칠판과 같은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지는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전의 다른 전자매체들도 비슷하게 처음 소개되었을 때는 과학적 연구와 긍정적인 결과들을 앞세워 큰 기대감을 갖게 했지만 곧 교육현장에서의 미미한 사용으로 이어지는 사이클을 밟았다. 그리고는 이러한 실패의 원인을 교사들의 게으름 탓으로 돌렸다.
그러나 교사들은 짧은 시간 동안에 어떻게 가르쳐야 가장 효율적인지를 체험을 통해 매우 잘 안다. 이러한 체험적 지식이 우리 교육의 목적에 바람직한 것인지 아닌지는 차후에 논의하더라도 현재의 교육여건 아래서는 최소한 현실적인 판단인 것은 사실이다. 많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일제식 수업을 하는 것이 가장 쉽게 그리고 싸게 정보를 전달하는 방법이다. 그리고 칠판과 책이 가장 손쉽고 다루기에 편한 매체인 것이다.
그러면 교사의 권위를 세워주고 다루기에 간편한 매체가 있는 데도 왜 힘들게 다른 길을 택하는 것일까. 교사에게는 교실에서 학생들과의 상호작용이 교수방법을 결정하는 중요한 변수다. 책과 칠판이 있는 한 교사는 교사의 위엄을 도전받지 않고 훌륭한 교사로 남을 수 있는 것이다. 다른 훌륭한 매체를 사용하는 경우, 영화는 교사보다 더 실감나게 설명을 하고 더 자세하게 보여줄 것이다. 이러한 매체를 사용하는 경우 교사의 역할은 기존의 역할과 달라져야 한다. 교사들은 학교에서 복잡한 교육매체를 활용해 교육의 질을 어떻게 높일 수 있는지에 대해 어디에서 교육을 받을 수 있겠는가. 교사의 달라진 역할은 어떤 매체를 사용하는가가 중요하다.
매체 연구에 의하면 내용 전달이 매체의 종류에 의해 학습 성취도가 달라지기보다는 학습할 때 주어지는 과제의 성격에 따라 많이 달라진다고 한다. 적절한 과제를 주고 이를 평가하는 일은 고유한 교사의 역할이 될 것이다. 교사는 새로운 교육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앞서 교육매체가 학교현장에 보급되었을 때의 경험을 살려 우리는 교육 정보화의 정책을 실행할 때 우선 순위를 심사숙고하여 결정해야 한다.
캘리포니아의 경우 시스코사에서 학교 정보화를 위해 막대한 예산을 투자했는데 그들은 대학을 우선 지원, 교사양성 프로그램을 만들어 교사들의 재교육을 실시했으며 이러한 교육을 받은 교사가 있는 학교에 국한해 정보화 자원을 지원했다. 따라서 교사들은 정보통신 기술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에 관한 준비가 되어 있는 상태에서 지원을 받기 때문에 학교에 도착한 기계들을 교육에 즉각 투입할 수 있었다. 텍사스 주의 경우에도 정보화 지원 예산의 70% 이상을 교사교육과 관련된 활동에 사용하도록 하고 있다. 학교가 정보화하면 교사는 업무가 줄어들어야 한다.
그런데 현재는 그렇지 못하다. 오히려 정보화로 인해 일거리가 더 늘어난다. 이러한 모순을 아일랜드의 경우를 통해 잘 엿볼 수 있다. 아일랜드에서는 학교에 컴퓨터 교실을 지원하겠다는 정부의 발표가 나자 교사들은 보조교사를 지원하지 않으면 컴퓨터를 받지 않겠다고 데모를 했다. 그 결과 정부는 교사들의 업무 부담을 인정, 보조인력을 컴퓨터 교실과 함께 지원했다.
선진국 중에서 우리와 비슷하게 중앙집중식 교육을 하고 있는 프랑스의 경우에도 초등학교에서의 정보기술의 적용을 반대한다는 일부의 오해가 있을 만큼 신중하게 학교정보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초기에 인터넷이라는 정치적인 문화 때문에(프랑스는 미니텔의 보급을 지원하고 있었다) 다소 신중하였던 것이 사실이나 지난해부터는 정부의 강력한 정책 아래 인터넷이 학교 교실마다 적극적으로 소개되고 적용되고 있다. 중앙집권식 교육체제의 나라에서는 일단 한번 정책을 시작하면 그 시행은 매우 빠른 속도로 전개할 수 있다. 따라서 좋은 정책이면 그 파급효과가 긍정적이고 그렇지 않다면 혼란이 가중된다.
학교정보화 계획은 교육을 이끌어가는 주체는 교사라는 상식에 충실하게 실행되어야 한다. 교사들이 학교 정보화에 준비될 수 있도록 지원하고 격려해 주는 일이 그 무엇보다도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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