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맨홀 (287)

환철이었다.

작은 키에 두터운 안경을 끼고 그렇게 들어섰다.

늘 그랬던 것처럼 작은 양주 한 병과 초 한 자루가 들어있는 꽃바구니 하나를 손에 들고 그렇게 들어섰다.

말이 필요 없었다. 꽃병에 꽃을 갈아 꽂고, 초에 불을 붙이고, 술잔에 술을 따르기까지 말이 필요 없었다.

서로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애를 쓸 필요도 없었다. 정해진 순서일 뿐이었다. 술잔에 가득 담긴 빨간 술의 의미도, 잔과 잔이 부딪히는 의미도 굳이 따질 필요가 없었다. 조용히 타오르는 촛불도 늘 그랬던 것처럼 푸른빛과 붉은 불꽃으로 구분된 채 너울거리고 있었다.

환철은 능숙하게 실내로 길게 길게 들려오던 디주리두 소리를 껐다. 전원 스위치를 내려 전등을 껐다. 또다른 한잔의 술을 서로 부딪히고, 혜경과 환철은 더이상의 말이 필요없이 되었다.

촛불이 작은 움직임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침대의 움직임은 격렬했다. 천천히. 그러나 아니었다. 환철은 그 어느 날보다 서둘렀다. 하지만 상관 없었다. 늘 가야 하는 곳은 정해져 있었고 그곳까지 가는 시간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촛불. 푸른빛과 붉은빛.

환철이 혜경의 방에 들어설 때마다 태우는 촛불은 늘 이 두 개의 빛이 투쟁하면서 타곤 했다. 붉은 빛의 상승과 푸른 빛의 하강, 가치와 반가치가 결투를 벌이며 불을 밝혔다.

거기에서는 두 개의 불꽃이 피어오른다. 하나는 파랗고 희게 빛나며 그 뿌리는 심지에 연결되어 있고, 다른 하나는 끝없는 상승의 꿈을 가지고 타오르는 붉은빛 불꽃이다. 그 촛불이 흔들렸다. 반쯤 찬 술잔이 붉게 흔들렸고 그 술잔에 환철과 혜경의 모습이 어렸다.

환철은 서슴없이 행동했다. 환철의 손끝 하나하나가 혜경의 몸을 조율하듯 움직여갔고, 그때마다 혜경의 몸은 전율했다. 소리. 혜경은 순간 순간마다 소리를 들었다. 재즈. 바라. 그리고 디주리두 소리. 각각 들리는 소리가 아니었다. 한데 섞여 들려왔다.

혜경은 언듯언듯 승민의 얼굴을 떠올렸다. 어쩔 수 없다고 여겼다. 마지막,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다짐만 할 뿐이다.

그런 혜경의 생각을 알고 있는 것인가. 환철은 그 어느 때보다 과격하고 파격적으로 행동했다. 그것은 서두름으로 이어졌다. 평상시와는 분명히 달랐지만 혜경은 눈치채지 못했다. 마지막이라는 그 다짐이 몸과 감각을 긴장하게 했던 것이다.

하지만 혜경은 더 중요한 것을 모르고 있었다.

평상시 사용하던 촛불과 오늘 밝혀진 촛불이 다른 것이라는 것을 혜경은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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